집에만 있던 60대 남편 "여보! 나 은행 재취업"...눈물의 출근, 성과 1등

김미루 기자, 김도엽 기자, 박소연 기자
2026.03.31 07:30

[MT리포트]귀한 몸 '퇴직 은행원'(下)

[편집자주] 퇴직 은행원이 은행으로 돌아오고 있다. 희망퇴직으로 70년대 초반생들도 은행을 떠나기 시작한 가운데, 현장에선 전문성과 경험을 요하는 업무가 중시되고 있어서다. 5대 은행에선 매년 2300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고, 퇴직자 1000명을 재채용하는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은행권의 퇴직자 재활용은 고령화 시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우려할 지점은 없는지도 함께 짚어봤다.

"집에만 있던 남편, 다시 지점장" 눈물의 다림질...'후반전' 뛰는 퇴직 은행원

③ iM뱅크 PRM 1기 윤기산 지점장

사무실에서 만난 윤기산 기업금융지점장(65)은 iM뱅크 수도권PRM 서울1센터에서 지점장들을 이끄는 '회장' 역할을 맡고 있다. 하나은행 지점장을 맡았던 퇴직 은행원이다. /사진=김미루 기자

지난 27일 iM뱅크 수도권PRM센터가 자리한 서울 중구 사무실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도, 키보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나가서 영업 중이에요." 은행 관계자의 말처럼 이곳은 현장 영업에 나선 퇴직 은행원들의 거점이다.

사무실에서 만난 윤기산 기업금융지점장(65)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걸음과 말투는 현직 지점장처럼 힘이 있었다. 그는 iM뱅크 수도권PRM 서울1센터에서 지점장들을 이끄는 '회장' 역할을 맡고 있다. 1980년 조흥은행에 입행해 2016년 하나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며 36년간 은행에 몸담았던 그는 2019년 PRM 1기로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

윤 지점장은 "55세에 퇴직하고 나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며 "골프도 쳐보고 친구도 만나봤지만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며 마음 한 구석이 멍했다"고 했다. 실제로 은행권에서는 퇴직 이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연봉 2000만~3000만원 안팎의 은행 보조 업무가 대부분이다. 윤 지점장도 가구회사로 재취업했다가 이내 그만두고 쉬기로 했다.

그때 은행 후배에게 iM뱅크가 퇴직한 은행 지점장 출신들을 다시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서 기업을 상대로 대출 영업을 하는 역할이었다.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고 성과에 따라 계약이 연장된다. 신규 채용 인원의 약 30%는 1년 내 재계약이 안 될 정도로 성과 압박이 세지만 지원자는 많다. 지난해 10명 채용 자리에 2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윤 지점장은 "영업이라면 너무 힘들다"고도 생각했지만, 은행원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고 했다. 과거 영업지점장 시절은 직원이나 점포 관리를 책임져야 했지만 이젠 영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젊을 때처럼 돈이 급하지 않으니 일에 더 집중하게 됐다. 윤 지점장은 "후반전은 생계형이 아니라서 오히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눈물의 재출근, 결과는 1등"…성과 내는 퇴직 은행원

지난 18일 서울 중구 iM뱅크 수도권PRM 서울1센터 사무실. 30여명 정도 기업금융지점장들의 자리가 있다. 이들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현장 영업에 나선다. /사진=박소연 기자

퇴직 이후 다시 법인카드와 명함을 받았을 때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PRM 지점장은 첫 회식 때 "퇴직 후 다시 출근하게 되자 아내가 와이셔츠를 다려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집에만 있던 남편이 다시 지점장 명함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고 밝혀 박수가 터져나왔다.

성과도 뒤따르고 있다. 윤 지점장이 속한 서울1센터는 지난해 성과평가에서 전국 모든 영업점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퇴직 은행원 중심 조직이 전통적인 영업 채널을 넘어선 첫 사례다. 특히 iM뱅크는 영업 기반이 대구·경북 지역에 집중돼 있어 수도권에서 기존 점포와 고객이 겹칠 가능성이 낮다. 이 덕분에 내부 경쟁 부담 없이 고객을 발굴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PRM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C레벨의 결단이 있었다. 윤 지점장은 "하나은행 부행장과 하나생명 사장을 지낸 김태오 DGB금융 회장(대구은행장 겸임)이 PRM을 은행원의 인생 후반전 이모작의 성공모델로 만들어 보자며 적극 밀어줬다"고 밝혔다.

◇5대 은행 DNA 모여, 주총장 찾아 영업

윤기산 기업금융지점장(65)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iM금융센터 건물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5대 은행 지점장 출신들이 모여 각자의 강점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도 PRM 조직이 경쟁력 있는 이유다. 김기만 iM뱅크 수도권그룹 부행장은 "한 PRM은 접촉이 어려운 기업 CFO를 만나기 위해 해당 회사 주식을 매수한 뒤 주주총회에 참석해 직접 만나 수십억원대 대출을 성사시킨 사례도 있다"며 "은행 입장에서도 8년간 PRM 지점장들을 통해서 수도권 영업 전략이나 네트워크를 많이 학습했다"고 말했다.

PRM 제도는 아직 실험 단계지만, 고령화 시대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성과만 낸다면 70세 넘어도 채용을 보장하며, 성과급으로 최대 3억원을 받은 사례도 있다. 성과급 1억원 이상을 받는 지점장도 전체 91명 중 5명가량이다.

김 부행장은 "8년차에 접어들면서 단순히 계약을 연장하는 구조를 넘어 센터 자체가 하나의 생활 공동체가 됐다"며 "성과가 부진한 구성원을 서로 격려하고 끌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 실적이 좋아야 센터장도 연장되는 구조다 보니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했다.

퇴직 은행원 재채용 확산…"조기퇴직 부추겨" vs "생산성 제고"

퇴직 후 재채용 제도를 둘러싼 시각 차이/그래픽=윤선정

은행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퇴직자 재채용' 제도를 두고 노동시장 안팎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고령화 시대에 대응한 유연한 인력 활용 방식이라는 긍정론과, 조기 퇴직을 유도하는 편법이라는 비판이 팽팽히 맞선다.

퇴직 후 재채용은 더 이상 은행권만의 흐름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년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38만9349곳) 가운데 재채용 제도를 도입한 곳은 2024년 말 기준 37.9%(14만7402곳)로, 4년 전보다 13.8%포인트(P) 증가했다.

기업들이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도입하는 배경에는 일률적인 정년 연장에 대한 부담과 전문인력 재활용이라는 필요성이 자리한다. 정년을 일괄적으로 늘리는 방안 대신 기업별 자율에 기반한 퇴직 후 재채용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AI가 줄 수 없는 전문성이 더 필요한 시대"라며 "퇴직한 장년층과 신입 인력의 역할은 다르기 때문에 신입 인력이 하기 힘든 역할을 퇴직 후 재채용된 인력들이 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권 재취업 인력들의 역할도 비슷하다. 한 시중은행 채용 담당자는 "재채용 인력은 신입이 대체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1인 지점장 역할은 물론이고 내부통제·준법감시·현장 감사 등 재채용 인력이 담당하는 업무는 경력과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퇴직 후 재채용이 기업의 인력 유연성을 높여 청년층 고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공서열 구조에서 고연차 인력의 임금 부담이 과도해지는 만큼 퇴직 후 재채용을 활용할 수 있다"며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부 장년층에 대해 연봉을 낮출 수 있는 제도는 바람직한 방안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고용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연공 서열에 따른 임금이 부담되니까 재채용을 통해 낮은 급여를 주려고 하는 방식"이라며 "현재 민간 기업이 활용하는 퇴직 후 재채용 방식은 정년보장을 피하기 위한 편법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퇴직 후 재채용 활성화로 청년층 고용이 확대된다는 주장엔 근거가 빈약하다는 반박도 나온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신규 채용은 2023년 1880명, 2024년 1320명, 2025년 1170명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또 신한·우리·IBK기업은행 등 3개 은행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임직원 수는 2022년 5070명에서 2023년 4420명, 2024년 4076명으로 감소했다. 전체 직원 대비 20대 비중 역시 같은 기간 12.30%에서 10.90%, 9.90%로 3년 만에 2.40%포인트(P) 줄었다.

퇴직 후 재채용 제도가 정년 전에 퇴직하는 구조를 조장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임금피크제와 조기퇴직을 통해 숙련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이후 재채용하는 구조가 사실상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정년을 보장한 이후 재채용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논쟁의 핵심에는 한국 노동시장 구조 전반의 문제가 깔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산·고령화와 AI 등 기술 도입으로 고용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업의 비용 부담과 세대 간 일자리 배분, 숙련 인력 활용이라는 과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퇴직 후 재채용 제도는 민간에서만 쓰이면서 정년까지 못다니게 하는 상황을 조장하는 면도 분명 있다"며 "그럼에도 재채용이 고령화 시대에 일부 대안이 되고 일 할 의사가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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