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황은 가득, 증거는 부실한 '세기의 재판'

김성은 기자
2017.05.01 04:10

"형사재판 판결문 중 재미있는 점은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해 무죄임을 판시할 때 결코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한다는 점이다."

형사재판에서 구체적 증거가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법조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한창이다. 지난 7일 첫 공판을 시작한 이래 매주 강행군이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했던 특검 측은 재판이 시작된 이래 종종 곤혹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측 변호인단이 '정황만 있고 증거가 없음'을 지적해 나가자 특검 측은 "특검 입장이 지라시인가?"라며 불편해 했다. 특검은 또 '짜맞추기가 아니다' '선입견을 갖고 수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는데, 방청석에 앉은 기자에게는 모종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아직 남은 공판이 많지만 '증거가 없다'는 변호인 측 지적은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일례로 특검 측은 삼성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계획하며 금융당국의 부정적 입장 표명에도 불구, 지속 추진한 것이 '믿는 구석' 즉, 청와대에 청탁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삼성이 결국 이 계획을 포기했고 금융당국 관계자 중 아무도 청와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은 사실이 없음을 피력했다.

재판부도 특검 측에 "청와대 압력을 받았다면 당국이 삼성의 계획을 계속 거절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라고 물었다.

특검 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는 원료물질에 대해 환경부 규제가 완화된 것도 부정한 청탁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의 "청와대로부터 삼성의 민원을 들어주라는 취지의 말을 들은 사실은 없다"는 내용의 진술조서에 대해 특검 측은 "수사기간이 부족했지만 식약처를 압수수색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특검 측은 이번 재판에서 유독 '제 판단에 따르면', '상식적으로' 등 모호한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증거재판주의'는 근대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번 특검의 판단과 재판 결과는 지속 회자되면서 다른 사건이나 판결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공판이 시작되기에 앞서 '세기의 재판'이라 불렸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처럼 정황다툼만 보여지고 있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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