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던진 말의 무게

심재현 기자
2018.01.29 17:46

대한상의 강연 중 삼성전자와 중국 국가발전개혁위 MOU 계획 공개...기업은 MOU 前 공개 부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회관에서 열린 초청 간담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헤드테이블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자리했다. /사진제공=대한상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아침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삼성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이하 발개위)의 MOU(양해각서)' 얘기를 꺼내는 순간 헤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윤부근 삼성전자 CR담당 부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김 부총리는 이날 강연 주제인 '혁신, 경제를 바꾸는 힘'의 한 사례로 중국과 우리의 교육제도를 비교하던 참이었다. 때마침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순방 후속조치로 한중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음달 1, 2일 중국을 방문한다는 일정을 전하면서 삼성과 중국 발개위가 MOU를 맺는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조찬 간담회가 끝난 뒤 자리를 나서는 윤 부회장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중국과의 MOU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투자계획은 기업 입장에서 대외비다. 상대방이 있는 계약의 경우 더 그렇다. 현장에서 윤 부회장을 따라 나서며 질문을 던진 취재진 중에서도 윤 부회장이 답변할 것이라고 기대한 이는 거의 없었다.

업계에선 경제부총리가 공개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아직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내용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달랐다. 간담회가 끝난 뒤 좀더 나갔다. 취재진의 추가 확인 요청에 "R&D(연구개발)와 기술표준에 대한 협력, 일부 투자 확대에 관한 내용"이라고 부연했다. 2015년 체결한 MOU가 지난해 만기 종료되면서 이를 좀더 심화, 확대하는 차원이라고도 했다.

복기해보면 이날 김 부총리의 강연은 거의 완벽했다. 사전 원고 없이 무선 이어마이크를 끼고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그래프를 직접 넘기며 자신의 소신과 정부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모습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게서나 봤던 장면이었다. '우리나라 공무원 중에서도 저런 사람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취재진의 관심은 'MOU 발언'에 쏠렸다. 공식 발표 전에 정부가 앞장서 우리 기업과 외국 정부의 투자·협력계약을 공개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김 부총리의 'MOU 발언'이 실언이었는지 의도한 언급이었는지를 판단하긴 쉽지 않다.

새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줄곧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빚어진 대중 긴장관계 해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통의 우방 미국과 최대 수출시장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 줄타기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길지 않은 기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럼에도 지난달 대통령의 중국 순방을 두고 국내에서 홀대론까지 나오는 상황은 정부 입장에서 충분히 서운하고 안타까울 일이다. 조그마한 성과라도 아쉬울 만하다. 이날 김 부총리의 짧은 언급도 그래 보였다. 'MOU 발언'에서 조급한 마음이 엿보였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개인적으로 방중 홀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설령 우리 집 식구가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하다 무시 받고 왔다고 해도 무시한 이를 탓하는 게 먼저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덩케르크'의 마지막 장면에선 2차 세계대전 당시 패주해 돌아온 군인들을 영국 국민들이 살아 돌아와 고맙다고 환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급할 것 없다. 좀 더 차분하고 침착한, 정부의 '신중 외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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