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주사 한진칼의 대표이사 박탈 위기에서 벗어났다. 국민연금이 주주 제안한 '이사 자격 강화' 안건은 부결됐다.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 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는 회사 측 안건에 대부분 반대했지만, 표 대결에서 밀리며 참패했다.
29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는 이사의 자격을 강화하는 정관 변경 안건 외에 모든 안건이 높은 찬성률로 통과됐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재무제표 승인 △'이사 자격 강화' 등 정관 일부 변경 △사외이사 3인(주인기·신성환·주순식) 선임 △석태수 대표이사 재선임 △감사위원 선임 △이사·감사 보수 한도 승인 등 7건이다.
이날 주총에는 대리위임 포함 의결권 있는 주식 5917만여주 가운데 77.18%인 약 4567만주가 참석했다.
최대 관건은 이사의 자격을 강화하는 정관 변경 건이었다. 조 회장의 한진칼 대표직을 박탈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3대 주주인 국민연금(지분 7.16%)이 제안한 이 안건은 '횡령·배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 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안건이 통과됐으면 조 회장은 재판 결과에 따라 한진칼 대표에서도 물러나야 하는 처지였다.
앞서 조 회장은 지난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서 주주들의 반대로 대표 연임에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안건은 찬성 48.66% 대 반대 49.29%로 부결됐다. 정관 변경은 특별의결 사항으로 주총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66.67%)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동안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행동주의 펀드 KCGI도 이날 주총에 출석했다. KCGI는 자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 10.8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이날 KCGI는 회사 측이 제안한 대부분의 안건에 반대하며 표결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분 외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했다. 회사 측 안건들은 70~80% 이상의 높은 찬성률로 모두 통과됐다. 앞서 KCGI는 지난 1월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 추천 등 안건 상정을 시도했으나 주식 보유기간(6개월) 미달로 안건은 상정되지 못했다.
이날 1호 안건으로 상정된 2018년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대해 KCGI는 "지난해 말 1600억원의 단기차입금 증가로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으로 늘었다"며 "이는 2조원 이상 회사는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규정을 이용해 감사규제를 회피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안건은 77.88%의 찬성률로 무난히 통과됐다.
4호 안건인 석태수 대표이사의 재선임 안건에는 "석 대표가 한진해운 사장으로 있으면서 회사를 살리는 데 노력한 점은 인정하지만 결국 회사의 부도로 한진칼에 부담을 안겼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이 안건 역시 찬성 65.46%로 가결됐다. 3대 주주 국민연금도 이 안건에 찬성했다.
회사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3인 선임에 대해서도 독립성이 부족하다며 반대했으나 안건은 모두 통과했다. 3%룰(감사 선임 시 최대주주의 지분을 3%까지만 적용)을 적용한 감사위원 선임 안건도 모두 승인됐다.
KCGI는 적극적인 주주 제안으로 주주 행동주의 바람을 일으켰으나 결과적으로 경영 참여에는 실패한 셈이다. 10%대 지분 외에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크게 얻지 못한 것인 패인으로 지적된다. 이날 KCGI가 안건에 반대하며 표결을 요청할 때마다 일부 주주들은 "의사 진행을 방해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신민석 KCGI 부대표는 "2대 주주로서 견제와 감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해 아쉽다"며 "추후 계획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