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업계가 급등한 시멘트 가격을 납품대금에 반영해 받아야 함에도 가격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처음에 시멘트 업계에 가격 인하를 직접 요구하던 건설업계가 요구가 통하지 않자 직접 거래하는 레미콘 업계로 '타깃'을 바꾼 탓이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들은 시멘트업계와 건설업계 중간에 끼어 원가 상승 부담을 떠안게 됐다고 토로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레미콘 제조사들의 영우회와 건설업계 측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는 지난달 말 수도권 레미콘 가격의 9차 협상을 했으나 가격 인하 폭에 합의하지 못했다. 영우회는 처음에 '가격 2년 동결'을 제시했다가 700원(레미콘 1톤 가격 대비 1%) 인하로 양보했으나 건자회가 더 큰 폭의 3300원(4%) 인하를 고수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들은 이달 중 10차 협상을 한다.
과거엔 1~2개월이면 끝나던 협상이 이번엔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시멘트 가격 인상'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2023년 말에 국내 시멘트 7개사는 톤당 가격을 11만2000원으로 약 7% 인상했다. 제조원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의 상승이 근거였다. 그런데 지난해 초부터 유연탄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고 건설업계와 더불어 국토교통부까지 시멘트 가격을 인하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국토부는 '중국산 시멘트 수입' 카드도 꺼내들었다. 하지만 시멘트 업계는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르려면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다며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건설업계는 시멘트 대신 레미콘 가격을 떨어뜨리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레미콘은 시멘트를 골재(자갈·모래)와 물, 화학물질과 섞어 만든 반(半) 완성 콘크리트를 말한다. 공사장에 쏟아부으면 바로 콘크리트가 된다. 건설업계와 직접적인 구매-영업 관계에 있기 때문에 레미콘 업계는 가격 협상에서 협상력이 떨어진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가격을 올려야 할 때"라고 호소한다. 레미콘의 원료값들은 가파른 오름세에 있다. 시멘트 가격은 최근 3년 동안 42% 인상됐다. 골재도 환경보호 기조 때문에 채석장, 채굴장 개발이 제한되면서 극심한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일제히 오른다. 터널 발파 공사 등에서 나온 부순골재가 한때 '저렴하다'고 각광받았으나, 현재는 해당 골재의 가격마저 상승추세다. 극심한 수급 불안에 제철소의 고로슬래그, 화력발전소 플라이 애쉬(석탄재)까지 골재로 사용된다.
여기에 레미콘 트럭 차주들에게 지급하는 위탁 운송료도 지난해 집단휴업 투쟁으로 3100원, 올해 3300원 인상돼 레미콘 업계의 운영비 부담을 커졌다. 생산원가가 오르면 납품대금에 자동 반영하는 연동제가 2년 전 시행됐으나 갑-을 관계 탓에 레미콘-건설업계 사이에는 적용된 사례가 드물다.
오랜 건설경기 침체로 레미콘 출하량은 IMF(국제통화기구) 금융위기 시절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가격 인하까지 감당한다면 지역의 영세한 레미콘 제조사들은 줄도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레미콘은 제조 후 90분 안에 타설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전국에 900여 영세 업체가 산재해 있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가격 인상의 부담을 레미콘 업계에 떠넘기는 것은 건설사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이라며 "원가, 운반비 모두 올랐는데 인상은커녕 가격 인하를 압박받으니 너무도 막막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