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반응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에너지를 위한 인공지능(AI)'을 주제로 17일 열린 스마트에너지플러스(SEP) 마지막 날 컨퍼런스장은 준비된 150석이 모두 채워쳤다. 서서 강연을 듣는 참가자들도 상당한 수였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이러한 풍경은 AI가 에너지 분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높은 관심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근 생성형 AI의 고도화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AI를 위한 에너지'가 전 세계 에너지 정책과 산업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동시에 AI를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전력 운영을 최적화하려는 '에너지를 위한 AI' 역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이날 정부 출연 연구기관, 대기업, 스타트업 등에서 참여한 발표자들이 소개한 정책 함의, 글로벌 동향, 기술 수준, 실제 적용 사례를 관통한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했다. 이 분야가 지닌 잠재력은 거대하지만 우리나라 제도는 아직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를 위한 AI'의 진전은 전력을 대규모 중앙 발전소에서 일방향으로 보내는 기존 구조와 달리 소규모 발전원이 여러 지역에 분산돼 공급과 소비를 병행하는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될 때 한층 가속화된다. 우리나라에서는 AI가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 등에 일부 활용되고 있지만 상용화 수준이나 연구 진전 속도는 여전히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
한국이 지금 막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개별 AI'(AI 에이전트)를 만들어보는 단계라면, 미국은 이미 여러 개의 AI가 서로 협력하는 '에이전틱 AI 플랫폼'을 구상하는 단계에 와 있다. '유틸리티 데스 스파이럴(Utility Death Spiral, 분산에너지 확산으로 기존 전력회사 수익 구조가 흔들리는 현상)'을 현실로 마주한 유럽에선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 사례도 등장했다. 영국의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가 대표적이다.
2015년 설립된 이 회사는 분산형 에너지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전환했다. 에너지 소비자는 AI 기반 플랫폼에서 자신의 에너지 사용량과 재생에너지 공급 가격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가장 저렴한 요금을 선택할 수 있다. 요금 결제, 상담 진행도 이 플랫폼에서 한다. 이 같은 모델 덕분에 옥토퍼스 에너지는 영국 가정용 에너지 시장에서 약 20~25%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전통적 유틸리티 기업들을 앞질렀다.
한국은 송·배전과 전력 소매시장이 한국전력에 의해 독점되고 있어, 송·배전 및 판매가 상당 부분 민영화된 미국이나 유럽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환경을 지닌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포함한 분산에너지 비중이 꾸준히 확대될 것은 분명하다. AI를 통한 분산자원 관리,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제어 등 분산에너지 시대의 필수적 기술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AI가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도록 하려면 정부의 규제 혁신과 전략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엔 민간의 역량과 시장의 관심이 있다. 민간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