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라인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 사측은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응 체계) 마련에 나섰지만 실제 생산차질이 빚어질 경우 손실 규모와 정상화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간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노조 요구안이 수용될 경우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12%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재원으로 하는 상한 없는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JP모간은 인건비 상승과 생산 차질 영향을 반영해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356조7190억원에서 313조4770억원으로 약 43조원 하향 조정했다. 감소 폭만 놓고 보면 지난해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43조6010억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JP모간은 "노조 파업이 현실화하면 연간 생산량이 D램은 0.9%, 낸드는 0.5%, 시스템LSI·파운드리는 2.4% 감소할 수 있다"며 "일일 웨이퍼 처리량 감소폭이 확대되고 생산라인 셧다운까지 발생할 경우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팹(공장)은 24시간 무중단 가동을 전제로 설계된다. 생산라인이 멈추는 순간 공정에 투입된 웨이퍼는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손실 복구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력·용수·인력·설비 등 각종 인프라 제약으로 인해 웨이퍼 생산 능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이 지난달 29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노조 상대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심문에서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체 가운데 쟁의행위로 생산시설 가동이 중단된 사례는 없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산 지표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조 결의대회가 열린 당일 야간 시간대 파운드리 생산 실적은 평소 대비 약 58% 급감했다. 메모리 생산 실적 역시 18.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자 애플과 HP 등 주요 고객사들은 삼성전자 측에 파업 가능성과 대응 계획을 직접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보다 먼저 파업에 돌입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는 이미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항암제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23개 제품의 생산 절차가 중단됐고, 약품 제조 공정에서 승인된 지침이나 기준과 다르게 생산이 진행되는 '디비테이션(Deviation)'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바이오의약품도 수개월간 투입된 원료와 제품을 전량 폐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도체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는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재원이 성과급 지급에 대거 활용되면서 영업이익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그룹은 지난달 30일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면서 성과급 관련 충당금을 실적 하방 요인으로 지목했다. 씨티그룹은 "노조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성과급 충당금이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해당 비용이 2026년과 2027년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 11일 메모리 가격 상승 지속을 이유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30만원에서 45만원으로 다시 상향했다. 업황 기대감으로 실적 전망은 개선되고 있지만 파업과 성과급 부담 확대가 변수로 떠오르면서 반등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파업에 따른 단기 손실보다 더 심각한 건 글로벌 시장에 '삼성은 공급이 불안한 회사'라는 인식이 굳어지는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은 신뢰가 핵심인데 그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초격차 전략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