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바이오 유래 성분이라고 해서 고객사들이 구매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기능입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양그룹 본사에서 만난 류훈 사업PU장은 바이오 소재 시장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삼양이노켐은 옥수수에서 추출한 솔비톨을 원료로 화이트 바이오 소재 '이소소르비드(ISB)'를 상용화했는데 류 PU장은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는 친환경 소재가 산업계 화두로 떠올랐음에도 실제 시장에서는 여전히 가격과 성능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류 PU장은 "설문조사를 하면 바이오 소재를 쓰겠다는 답변은 70% 가까이 나오는데 실제 제품 출시 단계로 가면 구매율은 이보다 떨어진다"며 "결국 가격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양이노켐은 ISB 기반 플라스틱을 세계 두번째로 상용화했다. 회사가 현재 시장에서 내세우는 건 '친환경'이 아니라 '스페셜티'다. 기존 석유 기반 소재보다 뛰어난 기능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한다는 의미다. ISB는 가격도 석유 기반 범용 소재 대비 약 2배 수준이라 성능 차별화 없이는 시장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페트(PET)병이다. 류 PU장은 "일반 페트는 뜨거운 물을 담으면 쉽게 수축되지만 ISB를 첨가하면 내열성이 높아져 변형을 줄일 수 있다"며 "뜨거운 물을 넣을 수 있는 플라스틱 병을 만들 수 있는 바이오매스 소재는 사실상 ISB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능성 덕분에 ISB는 상업화 초기였던 2022년 대비 지난해 판매량이 약 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객사 수도 2곳에서 20곳으로 늘었다. 류 PU장은 "뛰어난 물성이 입증된 데다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서 바이오 소재를 검토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ISB 개발은 식품과 화학 산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삼양그룹의 정체성에서 시작했다. 류 PU장은 "삼양그룹은 옥수수를 활용해 전분과 포도당, 물엿 등을 생산해왔는데 여기서 나온 당류인 솔비톨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없을지 고민하면서 ISB 개발이 시작됐다"며 "식품과 화학을 융합하는 삼양의 R&D 역량을 보여주는 소재"라고 밝혔다.
삼양이노켐의 ISB는 최근 선박 분야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화물창 분야댜. LNG는 영하 162도의 극저온 상태에서 운송되기 때문에 LNG를 보관하는 화물창에는 단열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액화가스는 운송 과정에서 선체 벽면에 반복적으로 충격을 주고 극저온 상태라는 특성상 파손이 더 쉽다는 문제가 있다. 류PU장은 기존 단열재 우레탄에 ISB를 첨가하면 내구성이 향샹돼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류 PU장은 "독자 기술을 가지려면 기존에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던 특허를 피해야 한다"며 "ISB는 우리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상업화한 물질이고 관련 특허만도 300개 이상 보유하고 있어 이점이 있다"고 했다.
삼양이노켐은 ISB를 이을 차세대 화이트 바이오 소재로 '바이오 아디프산'을 주목한다. 아디프산은 인장 강도와 내마모성이 뛰어난 '나일론 6,6'의 원료로 쓰이는 핵심물질이다. 석유에서 비롯되는 이 물질을 포도당 기반 바이오 공정을 통해 생산한다는 게 삼양이노켐의 구상이다. 류 PU장은 "화이트 바이오는 결국 석유화학 산업이 가야 할 방향"이라며 "한국이 석유화학 강국인 만큼 화이트 바이오 분야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