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이 개인과 사회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실업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대표적인 연구는 ‘마리엔탈의 실업자들’이다. 이 연구는 1930년대 섬유공장의 도산으로 대량실업을 맞게 된 작은 마을의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실업은 단지 개인에게 경제적 곤궁함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실업에 빠진 개인은 삶과 생활의 동기를 상실하고 체념상태에서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한다. 장기적인 실업은 미래를 희망하고 계획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하여 개인의 삶을 결정적으로 파탄에 이르게 한다.
이 연구를 진행한 야호다는 이를 통해 직업이 단지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직업은 개인에게 일상생활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유지하게 하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 목표의 추구에 활발하게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업의 부정적인 영향은 개인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심각하다. 많은 정치가와 학자가 세계를 파괴한 2차대전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경제적 요인에서 찾았다.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발생한 대량실업이 전쟁을 초래한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대불황이 양산한 실업자 대중의 체념과 절망은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정치적 집단들의 성장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유럽의 국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체제와 사회체제를 개선했다. 완전고용과 소득보장을 핵심 목표로 내건 복지국가가 구축된 것이다. 새로운 국가체제는 실업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적 노력을 경주했다. 이후 경기침체로 완전 고용이 항상적으로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도 실업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업자들은 실업급여로 상당한 기간에 생활수준을 이전처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나라가 실업부조를 통해 은퇴하는 시기까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했다. 동시에 이들 국가들은 실업자들의 재취업을 향상시키는 여러 가지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한다. 이 결과 실업은 괴롭지만 견딜 수 있는 성격으로 전환되었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한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실업에 대처하는 독일 사람들의 태도에 있었다. 일자리를 잃은 필자의 지인들은 예외 없이 해외 휴가를 떠났다. 일단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를 찾아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여유가 사회적 보장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복지국가가 실업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실업자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유지하고 계획하게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실업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여전히 취약하다. 고용보험이 운영되지만 실업자들 중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은 절반에 못 미친다.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발적으로 퇴사한 실업자에게는 실업급여는 지급되지 않는다. 또한 실업급여를 받더라도 급여 수준이 낮고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짧다. 명목상 구직급여는 실업 전 소득의 50%를 보장한다. 하지만 1일 최대 상한액이 낮아서 구직급여의 급여 수준은 실질적으로는 실업 전 소득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벨기에의 72%, 독일의 64%에 비해 매우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8%에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국의 복지제도가 실업에 빠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실업자들은 실업의 고통을 개인적으로 감내해야 한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사태 후 지금까지 모두 28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이로 인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실업은 개인의 안정과 생존을 위협하는 충격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결정된 해고요건의 완화는 올바른 정책적 대응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쉬운 해고가 경제적인 효율성은 강화하겠지만 이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절망이 만연한 한국의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쉬운 해고가 아니라 사회적 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