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완화는 1%를 위한 부자감세가 될 수 있다. 가격을 낮춰서 과도한 수요를 유발하게 되면 정부가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것이다”
지난 8일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의 말이다. 누진제를 완화할 경우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요금은 오르고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요금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얘기다. 또 ‘전력 피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여름철에 에너지절약 유도’라는 누진제 도입의 목적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누진제 개편에 강경하던 산업부의 입장이 불과 이틀만에 번복됐다. 이정현 새누리당 새 대표가 “누진제 개선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뒤늦게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둘 중 하나다. 산업부의 입장변화는 에너지소비의 변화상을 읽지 못하고 국민적 불만이 쌓여온 누진제에 대해 합리적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거나 당과 청와대가 요구하니 마치못해 ‘코드맞추기’ 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15년 연말정산파동 때도 그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연말정산 파동 당시 “5500만원 이하 세부담 증가는 없다”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연말정산이 끝난 뒤 세부담 내용을 분석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다 청와대와 여당의 강경발언이 나오자 “즉시 보완하겠다”로 이내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당시 보완대책으로 인해 면세자 비율이 32%에서 48%로 높아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정확한 원인진단이나 체계적인 준비없이 당과 청와대 요구에 떠밀려 부랴부랴 입장을 뒤바꾼 결과다.
이번 누진제 개편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왕 누진제를 개편하기로 했으면 단순 여론 무마용이 아닌 합리적 대안을 도출해줄 것을 바란다. 산업부의 이번 입장 번복이 윗선에 대한 ‘코드맞추기’에 머물러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