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에 반대한 택시기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혔을 택시 안의 인생을 가늠해본다. 승차거부, 골라 태우기의 이면에 자리한 하루 11시간 근무 실태가 무겁게 다가온다.
그가 맞닥뜨린 진짜 문제는 어쩌면 그런 삶도 시한부라는 데 있었는지 모르겠다. 카풀은 시작에 불과하다. 조만간 운전자 없는 택시 시대가 온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지난 5일 구글의 자율주행 택시가 세계 최초로 서비스에 들어갔다.
카풀이 택시기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선을 넘어 무인(無人) 택시가 기사를 쫓아내는 시대가 목전까지 밀어닥쳤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삼성, LG,현대차같은 알만한 기업이 모두 자율주행차를 준비한다.
택시를 위한 애사(哀詞)에 앞서, 시작해보기도 전에 치워질지 모를 카풀을 다독여야 할 만큼 빠른 기술의 진전 앞에서, 기사의 생존권이나 노동자의 권리는 마냥 무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위기감, 지금 밀리면 다음은 없다는 기시감이 기사들을 국회 앞으로 불러들이는 게 아닐까. 기사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힘에 치여, 상황에 몰려 물러선 양보의 역사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점잖게 말하면 외면하고 과격하게 말하면 진압하는 현실. 서로가 평등한 협상의 기술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경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건 강물은 바다를 거스를 수 없다는 이치다. 마부(馬夫)의 시대를 끝낸 것 역시 19세기의 증기자동차 드라이버들이다. 무인차 시대에 가서 차를 만들지 말라고 할 순 없잖은가.
가능한 일인지 따져볼 일이지만 정부가 기사들의 악전고투를 개선하기 위해 제안한 완전월급제에 대해 택시업계의 반응이 싸늘하다고 한다. 기술의 발전에서도, 여론에서도 기사들은 설 자리가 줄어만 간다. 분향소 향내 속 초재기에 몰린 택시의 운명이 위태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