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곳곳에 숨어 있던 불법체류자들이 하루에도 수천명씩 자진 출국하고 있다. 법무부는 그들에게 재입국을 보장했다. 코로나19가 불법체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교정해 줄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예멘 난민 요즘 누가 받아 주나. 예멘인들은 비행기 예약도 못한다"
2018년 6월 개봉한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에 나오는 미국 CIA(중앙정보국) 요원 맷(조슈 브롤린 분)이 '예멘'출신 이민자들의 대형마트 자살폭탄 테러를 수사하다 용의자를 추궁하면서 한 대사다.
영화는 예멘 출신 테러범들이 미국에 입국한 루트를 쫓으면서 전개된다. 예멘인들은 각국에서 입국이 금지돼 비행기를 타지 못하자 마약 카르텔을 통해 배로 '밀입국' 한다. 테러범이 섞인 예멘인들을 배를 통해 아덴만에서 멕시코까지 간 뒤 다시 텍사스쪽 국경을 통해 미국에 들어간다. CIA가 이를 막기 위해 비공식 전쟁을 벌인다는 게 영화의 설정이다.
시나리오가 쓰여진 2016년 초, 예멘은 내전 중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행정명령으로 예멘을 포함한 중동 7개 이슬람국 국민의 입국과 난민프로그램을 금지시킨 건 2017년 1월이다. 나라 밖에선 이미 2016년 쓰여진 할리우드 시나리오에 예멘 난민 소재가 반영될 정도로 예멘 상황은 국제 이슈였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2018년 6월 제주에 도착한 500명이 넘는 예멘인 난민 신청으로 논란이 커지자 그제서야 예멘인들에 대해 입국금지(무사증불허국가 지정) 조치를 내렸다. 예멘인들이 이전처럼 100명 미만 단위로만 계속 유입됐다면 입국금지도 없었을 것이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국제 난민 상황에 둔한 법무부'란 비판이 나올 만 했다. 테러를 다룬 영화가 국내 개봉돼 '예멘인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하지 못한다'는 대사가 스크린에 자막으로 쓰여진 뒤에야 '입국금지'조치가 내려질 정도로 뒷북 행정이다.
'외교부'와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다. 쿠알라룸푸르-제주 직항로가 개설되면 '무사증' 제도가 적용되는 제주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 지 예측하지 못했다. 무능했단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평창동계올림픽 활성화를 위해 넓혀 준 무사증 혜택으로 관광객인양 입국한 뒤 사라져 불법체류자가 된 외국인이 5만여명이 넘는데도 법무·외교·국토교통부는 경계심이 없었다.
특히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문제다. 난민에 별 관심이 없었고 국제 상황을 살필 전문가가 적었다. 출입국 관리업무는 법무부 내에서 한직(閑職)이다. 검사가 주류를 차지하는 법무부에선 불법체류자나 잡고 공항·항만 출입국 관리를 하는 역할은 비주류일 수 밖에 없다.
법무부 누군가가 예멘인에 대한 입국금지 필요성을 선제적으로 주장했어도 이를 보고해 관철시키긴 어려웠을 것이란 점이 더 문제다. 난민·이민 정책은 이미 지난 두 번의 보수정권 뿐 아니라 그 이전 진보정권에서도 완화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런 분위기에선 공무원이 난민·이민을 억제하는 방향의 제안을 상부에 내기 어렵다.
예멘인 입국금지, 난민 심사강화 등은 제주 예멘인 사태가 없었으면 나오기 힘들었을 대책이다.
그간 정부 정책은 한 쪽으로 기운 '강요된 난민·이민·불법체류자정책'이었다. 국민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보수정권은 '저출산', 진보정권은 '인권'을 앞세워 난민·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계몽하려는 듯한 강압적인 자세였다.
하지만 여론 조사에선 응답자 90% 이상이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 국민 뜻을 항상 존중한다던 정부와 정치인들도 난민·이민·불법체류자 문제에 있어선 이상하게 국민 일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소위 오피리언 리더들은 공적 발언으로 '난민 수용 반대'나 '불법체류자 추방'을 외치지 않는다. 과연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사석에선 많은 정치·법조·언론인들이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 불법체류자를 방치하는 게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배웠다는 이들일수록 천부인권 혹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얕은 지식,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강박에 난민과 불법체류자 유입에 따른 부작용엔 입을 닫는다. 일부는 '난민을 받고 불법체류자를 안아야만 선진국이 된다'고 믿는 '패션인권'이라 부를만한 사고방식도 보인다.
선진국이라는 서유럽이 난민문제로, 불법체류자들로 사회질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는 현실을 외면할 순 없다. 테러공포로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 경비가 삼엄해진 최근 유럽 상황을 보고도 못 본 척 해선 안된다. 일본이 난민과 불법체류에 대해 국경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이유도 살펴야 한다.
지나친 포퓰리즘도 문제지만, 국민 뜻을 거스르는 정치는 옳지 않다. 한비자(韓非子)는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말라 했다. 가장 무서운 역린은 국민의 뜻, 민심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순자(荀子) 역시, "임금은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고 불법체류자는 추방해야합니다"라고 당당히 외치는 정치·법조·언론인은 왜 보기 힘든 것일까. 무식한 시민들을 계몽시켜 '인권친화적' 서유럽형 선진 시민의식을 갖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이라면 지나친 '오만'이다.
혹시라도 자신을 '반인권적 인종차별자'로 여길 것을 걱정해 '속내'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비겁한 '망상'이다. 불법체류자 수용문제는 '인종차별' 이슈에 관한 논술이나 탁상토론 주제처럼 찬반에 폼나게 손만 들면 되는 게 아니다. 냉정하게 결정해야 할 현실의 '딜레마'고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사회적 발언권을 가진 이들이 계속 몸을 사린다면 시민들은 더 분개할 수 밖에 없다.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서라도 책임과 권한 있는 공인들은 발언대에 서야 한다.
쏟아지는 국제 뉴스와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에서 난민·이민·불법체류자 소식을 누구나 쉽게 접한다. "국민이 잘 몰라서 그렇다"는 오만한 사고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조선 말, 사대부 쇄국주의자들은 낡은 중화(中華)에 갇혀 외국문물을 반대하는 고집을 부렸다. 그때 위정자(爲政者)들은 세계정세를 잘못 판단해 문호를 닫으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위정자들은 국경을 닫아야 할 상황에 오히려 여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착각한다. 사회 지도층이 아집(我執)을 부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단 점에서 조선 말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로 탈출하는 불법체류자들은 한국을 돈을 벌기 위한 곳으로 이용할 뿐이다. 불법체류자들에게 일자리를 내 준 만큼 내국인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건 자명하다. 3D 업종 일자리를 불법체류자에게 의존하고 임금이 낮은 걸 당연히 여기는 건 후진적이다. 선진국을 지향한다면서 아직도 험하고 힘든 일의 인건비는 오르지 않는다. 사람귀한 줄 아는 선진국이라면 내국인이 3D 업종에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인건비가 높아야 한다. 불법체류자를 써야만 운영되는 한계기업은 더 이상 운영돼선 안 되는 막장 일터다.
법무부는 불법체류자들에게 자진출국시 재입국 허용의 이유로 합법화된 외국인 인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소위 '선순환 인적교류 활성화'다. 과연 법무부 바람대로 불법체류자가 줄어들까. 게다가 국민들은 법무부의 정책방향에 찬성한 바 없다.
오늘도 불법체류자가 짓는 새 아파트에 입주한 이들은 하자리스트 항목을 채우면서 10년전보다 못한 아파트 마감품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한다.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민원건수는 2010년 69건에서 2011년 327건, 2012년 836건, 2013년 1천954건 등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5년 이후로는 매년 4천여건씩 하자분쟁이 접수되고 있다.
어쩌다 한국인들이 불법체류자들이 짓는 하자투성이 아파트에 살게됐나.
국제사회는 냉정하다. 난민·이민·불법체류자 문제는 오로지 국내 사정과 국익에 맞춰 결정해야 한다. 코로나19로 한국을 탈출하는 불법체류자들처럼 우리 정부도 냉정하고 실리적으로 불법체류자들을 바라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