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리스크는 존재한다. 반면 탈원전 리스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소한 20년 너머를 내다보는 에너지 대계(大計)라면 정부가 확실한 비전과 책임감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중략) 시류에 편승한 에너지 대계는 미래세대에 재앙이 될 수 있다."
몇년 전 한 일간지의 칼럼에 실린 내용이다. 탈원전을 비판하는 글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지적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일이다. 당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3~2035년) 수립을 위한 민관 워킹그룹이 원전 비중을 5년 전 1차 계획 때의 41%에서 대폭 낮춘 22~29%로 제안하자 사실상의 '탈원전'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이전 이명박 정부가 1차 계획을 만들 당시에는 '녹색성장'의 기치 아래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원자력을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수준의 청정 에너지로 간주했다. 싸고 깨끗하고 안정적이고 세계적인 기술력까지 갖춘 원자력을 적극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기조 아래 2008년 8월27일 의결된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2008년~2030년)은 2006년 26%이던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41%까지 높이기로 했다. 원전을 추가로 20기 이상 지어 2030년 42기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바야흐로 '원전 르네상스' 였다.
호(好)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보수정부였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안전 우려를 증폭시켰고, 부품 납품 비리까지 터지면서 원자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핵폐기물, 사고 우려 등을 들어 원전 확대를 반대해 온 환경 단체와 야당의 공세가 불을 뿜었다. 이런 가운데 2014년 1월14일 확정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선 목표 시점인 2035년 원자력 비중을 29%로 낮추게 된다. 원전 확대와 급속한 축소에 대한 우려를 함께 고려해 워킹그룹 권고안의 최상단으로 결론낸 것이다.
당시엔 여론에 떠밀려 원전을 대폭 축소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원전을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환경단체와 야권은 원자력 비중은 낮추면서도 2035년 가동될 원전 수는 41기로 이명박 정부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꼼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력수요 전망치를 '뻥튀기'해 원전 확충 기조를 유지했다는 거였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원전 정책은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기조로 확실하게 돌아선다. 2019년 6월4일 확정된 제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9~2040년)은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신규 원전 건설 및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르면 국내 원전 수는 신한울 1,2호기가 준공되는 2022년 26기를 정점으로 2034년에는 17기로 줄어들게 된다. 이전 정부 안보다 24기 가량 더 줄어드는 셈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원전을 짓지 못하게 함으로써 원전 생태계 자체가 고사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원전 정책은 내년 들어설 새 정부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양강 중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원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당의 이재명 후보도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문제와 관련해 "재고해 볼 수 있다"며 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원전은 적폐 청산 하듯이 없애려는 것도 문제지만 만병통치약처럼 여길 것도 아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나, 사고 우려 등으로 부지 선정 부터 온갖 민원과 갈등을 넘어서야 한다. 밀양 송전탑 사건을 야기시켰던 고압의 전선과 송전탑도 어딘가는 세워야 한다.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탄소중립 시대의 해결사처럼 간주되지만 또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원전 정책이 널뛰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새 정부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탄소중립이 될 것이다. 원자력은 분명 대한민국 '에너지 믹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조연일수도, 주연일수도 있다. 적절한 캐스팅, 균형과 실용이 필요하다. 원자력의 몸값을 끌어올린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탈원전을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