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허울 뿐인 '오픈 이노베이션'에 멍든 스타트업

김태현 기자
2022.09.06 06:30

"대기업과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라 기대했는데 1년 가까이 가타부타 말도 없고, 시간만 흐르니 속만 새까맣게 탑니다."

최근 만난 스타트업 A사 임원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토로했다. A사는 오픈 이노베이션 파트너인 대기업 B사의 소극적인 태도에 발목 잡혀 제대로 사업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상황이 나빴던 건 아니다. 올해 초 현장 실사 이후 긍정적인 답변도 받았다. 그러나 B사는 실사를 담당한 실무진이 회사를 떠났다는 이유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다. 그러는 동안 A사는 다른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까지 잃었다.

대기업의 경직된 의사 구조를 감안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진정성 없는 오픈 이노베이션 제의에 피해를 보는 건 A사다. 하루하루 생존을 고민하는 스타트업에는 치명적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가장한 기술 탈취 시도도 적지 않다. 대기업 C사는 재활용 관련 스타트업 D사에 오픈 이노베이션을 빌미로 기술 공개를 요구했다. 단순히 오픈 이노베이션을 넘어 D사의 핵심 기술력까지 모두 공개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D사는 거부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C사는 D사와 동일한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부를 신설했다. 자칫 오픈 이노베이션을 빌미로 D사의 기술이 고스란히 C사에 넘어갈 뻔한 상황이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한다. 구조적 문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파트너십을 표방하지만, 대기업의 자본과 인프라에 의존해야 하는 스타트업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자칫 외부로 이런 사실을 알렸다간 다른 대기업과의 협업은 물 건너간다.

상호 계약 관계인 오픈 이노베이션은 정부에서 규제할 방법은 없다. 기술 탈취의 경우 공정거래법에 따라 과징금이 부과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처벌받은 사례는 손에 꼽는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올해 초 민간 주도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뿌리기식 지원에서 벗어나 성과 중심의 창업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역시 민간 주도 창업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한 축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진정한 혁신 창출 창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중기부도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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