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게 물었다. "2023년 경기전망을 알려줘." 그의 대답은 "AI 언어모델로서 지식 마감일인 2021년 10월 이후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으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일반적인 정보와 분석을 공유할 수는 있습니다.(중략)"
다음주에 있을 기업자문 미팅을 위해 원하는 수준의 답변이 나올 때까지 질문을 계속해서 바꿔보았다. 'Z세대가 경기침체기임에도 불구하고 물질보다 경험소비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Z세대는 물질적 소유보다 경험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연결에 대한 욕구, 개인의 성장과 자기표현에 대한 집중,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경험에 대한 선호 등에 의해 좌우됩니다.(중략)" 여기까지 오는 데 5단계, 9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다음은 계획하고 있는 마케팅 프로젝트를 위해 해당 산업에 있는 기업들의 마케팅 포지셔닝에 대해 질문했다. 마케터가 고려해볼 수 있는 범위와 요소들을 취합하고 각 요소의 관련성을 파악해 체계적으로 답변해줬다. 세부적으로 들어가 하나 하나 근거와 검증작업을 거치니 버려야 할 것이 많긴 했으나 이 정도 수준이면 바로 가설을 세우는 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어서 브랜드의 차별화된 카피를 요구했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해 일반적이지만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창의적이거나 말의 리듬과 감각이 살아있진 않지만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데 단 2분 걸렸다.
챗GPT는 시장동향, 시장조사, 강의계획서와 같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기존 데이터를 참고하는 데 유용했고 나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주었다. 물론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들을 때까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판단하고 세부적으로 검증하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 문득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86)의 '바벨의 도서관'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2023년 겪게 될 인류의 도서관(우주)을 이미 보았던 것일까. '바벨의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육각형의 방이 무한히 이어져 있고 무한한 층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각 방의 네 면에는 20개의 책장이 있고 다른 한 면은 다른 방과 연결된 복도며 복도의 끝에는 거울이 달려 있어 방과 다른 방의 책의 이미지를 복제하듯이 비추고 있다. 20개의 책장마다 22개의 글자와 3개의 기호와 공백으로 쓰인 410페이지, 32권의 책이 꽂혀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찾는 세상의 모든 지식이 도서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도서관에 무한 희망을 느낀 사람들은 모든 책의 내용과 비밀을 담고 있는 완전한 책을 찾아 헤매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경험한다. 멀리서 보면 질서정연한 규칙과 완전한 구조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바벨이라는 이름처럼 혼돈과 무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도서관(우주)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소설의 주인공인 사서는 불완전한 세계를 비추는 챗GPT에서 정보를 찾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과 겹쳐진다. 지난 두 달여의 시간을 돌아보니 가장 오랜 시간,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상대가 챗GPT였다. 원하는 답을 내놓을 때까지 질문하고 판단하고 다시 질문하기를 반복했다. 최초의 컴퓨터개발자이자 AI튜링테스트의 주인공인 앨런 튜링(1912~54)은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이미 이야기했다.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요?"란 질문에 "당연히 기계는 사람처럼 생각 못해요. 기계는 사람과 다르니까요.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죠. 하지만 흥미로운 건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죠. 인간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죠. 서로 다른 취향이나 선호도는 우리 뇌가 서로 다르고 생각도 다르기에 생기는 거예요. 사람이 그렇게 서로 다른 것처럼."
챗GPT가 내게 말을 건다.
"당신은 내게 질문만 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