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일, 리커창 중국 총리의 말 한 마디가 파장을 불러왔다. 기자회견에서 "중국 (소득 하위) 6억명의 월 소득이 고작 1000위안(약 18만8000원)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시진핑 국가주석의 '샤오캉 사회(모든 인민이 편안하고 풍족하게 사는 사회) 완성'을 비꼬았다는 풀이 때문이었다.
그럴 만했다. 샤오캉 사회는 원래 덩샤오핑이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완성하겠다고 선언한 구호였다. 그 바통을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 주석이 물려받았는데 자신의 치세에 이르러 이 과업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터였다.
샤오캉 사회 기준은 2020년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의 두 배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자신의 시대에 중국이 주요 2개국(G2)에 올라서고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을 들어 샤오캉 사회 완성의 축포를 쏘아 올렸다.
이런 와중에 리 총리 발언은 "전 인구의 절반가량이 여전히 가난뱅이인데 무슨 소리냐?"고 잔칫상에 재를 뿌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도발적 언행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오쩌둥 이후 최대 권력자로 평가받는 시진핑 주석 치세에 공산당 서열 2위 리 총리 존재감이 빠르게 사라지던 참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쳇말로 '살아 있네!'였다.
국가주석 0순위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시진핑에게 권좌를 내주고 2인자로 내려앉으면서 '비운의 황태자'는 그를 설명하는 꼬리표가 됐다. 그전까지 중국 내 최대 엘리트 집단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공청단 좌장이던 후진타오가 든든한 뒷배였다. 그러나 장쩌민 전 주석의 상하이방과 정치적 타협 끝에 무당파 시진핑이 1인자로 올라서면서 주석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2013년 시-리 체제 출범 때만 해도 총리 존재감이 이렇게까지 약화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거 총리들은 2인자답게 영향력이 작지 않았다. 장쩌민 주석 시절 주룽지 총리는 적자투성이 국유기업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 원자바오 총리는 농촌 경제 개혁을 지휘하고 쓰촨 대지진 현장에서 이재민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흘린 모습은 중국인들 가슴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리커창 총리가 아예 숨죽여 지내던 건 아니다. 코로나19 방역 수위가 모든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지난해 리 총리는 고군분투하다시피 하며 '경제도 살피라'고 틈날 때마다 부르짖었다. 겉으로 보이는 대상은 주로 지방정부 공직자였지만 실제로는 저편에 서 있던 시진핑 주석이었다.
외신들은 10월 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리 총리 행보를 시 주석을 향한 권력투쟁으로 바라봤다. 옛 지도자들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뒤집어 말해 시진핑 주석의 권세가 과거 지도자들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방증이다.
양회를 끝으로 은퇴를 앞둔 리 총리가 후배 공직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영상마저 소셜미디어에서 삭제되고 있다. "최우선 순위는 발전이며 그 동력은 개혁이다. 모든 것이 여러분 손에 달렸다"고 말하는 장면은 정상적인 경로로 볼 수 없다. 지난해 10월 당대회를 전후로 '커창지수'를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음으로 양으로 퍼졌다.
돌이켜보면 이때 이미 리커창 지우기가 시작됐는지 모른다. 시진핑 1인 체제에서 존경의 대상마저 제한되고 획일화되는 과정으로 읽힌다.
리커창을 끝으로 중국은 총리의 역할을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을 수도 있다. 당정 통합의 거대한 흐름 속에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모든 분야에 시 주석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새 총리 자리를 예약한 리창을 세계가 주목하는 건 단순히 그가 시자쥔(시진핑 주석 측근 그룹)의 일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된 관심사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극복하고 '성장 불씨를 다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냐'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커창 지우기의 성공 여부는 여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