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사태 여파로 우리나라의 정치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미일 동맹을 유달리 강조했었던 각국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후임에게 자리를 넘겨줬고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이후 국회의 탄핵으로 권한을 정지당한데 이어 구속 상태다.
새로운 리더십 하의 미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일 무역적자 해소와 관련해 1조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상호 관세 설정 등 유화책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일본과의 교역에서 1000억달러(약 146조원)가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중국과 멕시코, 캐나다 등을 겨냥한 관세 발표로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는 등의 위력을 과시했던 그는 '일본에 관세를 부과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상호 관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보복관세를 실행하거나 언급했던 중국, 멕시코 등과는 뚜렷이 달라진 것이다.
이시바 총리가 '미국이 일본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보복하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가정적인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웃으며 "매우 좋은 답변"이라고 호응한 것도 눈길을 끈다.
양 정상의 대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방위비와 관련한 부분이다. 이시바 총리가 일본이 오는 2027년까지 방위비를 지난 1기 때와 비교해 2배 늘리기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한 것이 대표적이다. 방위비가 늘면 자연스럽게 주일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한일 양국은 모두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미국과 방위비분담금 협정을 체결하는 국가다. 또 미국과 교역에서 한일 양국 모두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방위비 증액은 우리에게도 여파가 미칠수 있다.
집권 1기 때 한국이 5배 많은 방위비를 분담해야 한다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엔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가 지금의 9배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의 부재로 트럼프 취임 이후 한미 정상간 통화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아쉬운 상황 속에서 국내 전문가들은 당선인 시절 트럼프와 윤석열 대통령과의 지난해 11월 통화에 주목한다. 당시 트럼프는 윤 대통령에게 "미국 조선업은 한국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의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알고 있고, 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도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 해군은 전 세계 해군 중에서 여전히 세계 최강의 압도적 해군 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배 만드는 능력과 보수, 정비 분야에서는 중국에 뒤쳐진지 오래다. 중국의 조선 능력은 현재 미국의 233배에 달하며 기존 함정의 유지·보수·운영(MRO)이 계획기간 내 완료되는 정도도 미국은 중국의 40%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5월을 떠올려보면 유사시 한반도 투입 등 대북 억제 임무를 맡아 일본에 머무르는 미국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이 로널드 레이건호에서 조지 워싱턴호로 교체됐다. 2008년부터 7년간 해당 업무를 맡았던 워싱턴호의 정비, 보수가 2017년부터 7년에 걸쳐 진행됐던 것과 달리 레이건호 정비, 보수에 국내 대표 조선기업들의 손길이 미쳐 MRO 작업이 빨라진다면 방위비 분담강요의 방패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보수세력의 씽크탱크로 꼽히는 헤리티지재단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가 있을 경우 한국이 조선업을 통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여하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거래의 대가' 트럼프의 도박에 우리의 카드 준비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