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관세협상의 교훈, 바람이 바뀌면 돛을 고쳐 단다

박재범 경제부장
2025.08.05 04:25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선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 정부 출범 후 50일만에 이뤄낸 결과물치곤 괜찮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이 평가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보이지만 사실 반대다. '뉴노멀'이 된 '관세 15%'는 대부분 예측했던 바다. 협상 과정은 치열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관세'라는 제목이 붙은 '트럼프 쇼(show)'였다.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라는 비판도 쇼의 일부로 활용했다.

쇼를 마무리할 때면 'TACO' 대신 '됐고'를 외쳤다. 일본의 자금도, 한국의 FTA(자유무역협정) 논리도, EU(유럽연합)의 읍소도 단칼에 잘랐다. 추가 설명은 없었다. '15%'를 선언하며 쇼를 마쳤다.

그나마 팀 코리아는 쇼의 무대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원자력 등 산업 포트폴리오를 과시했다. 삼성, 현대차, 한화 등은 포트폴리오를 뒷받침할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민관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쇼의 한 장면을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호스트(HOST)가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뉴스1) = 도너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합의를 타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악관 X. 재판매 및 DB 금지) 2025.8.1/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자찬과 비판,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다만 이번 협상의 교훈은 분명하다. '현실 인식'이다. '뉴노멀'은 '단지 15%'라는 숫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질서가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트럼프 취임 6개월, 관세 부과 4개월 동안 마음 한켠에 품었던 '설마'와 '혹시나'는 완전히 잊어야 한다.

세계경제는 블록화되고 있다. 관세라는 보호무역의 파고 속에서 혼자 버틸 수 없다. 협력할 수 있는 동반자와의 유대가 절실하다.

팀 코리아는 훌륭했지만 우리만 단독으로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쇼였다. 일본도 혼자였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쪼개서 공략했다. 수천억달러의 돈을 뜯어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위치가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결국 같은 처지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보호주의 시대, 미국과 중국처럼 홀로 설 수 없다면 함께 가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책자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의 두 번째 챕터 제목이 '나혼자 한국경제에서 손잡고 경제연합으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의 주문으로 발간한 것인데 최 회장이 줄곧 강조했던 '한·일 경제 공동체' 구상의 일부가 담겨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경제는 1조8000억달러 규모다. 일본과 손잡으면 6조~7조달러 경제권이 된다. LNG(액화천연가스) 공동구매만 해도 가격 협상력이 배가된다. 한국의 반도체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가 손잡으면 저비용 연구개발의 길이 열린다. AI(인공지능) 시대 제조업 강자들이 데이터와 기술을 공유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한일이 협력해 경제블록을 만들고 목소리를 키운다면 위상이 달라진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위상 변화는 '규칙 추종자(Rule Taker)'에서 '규칙 제정자(Rule Setter)'로의 변신이다. 미국은 이미 룰을 바꿨다. 1대1 협상 체제로 재편했고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일 관계는 정치‧외교적으로 미묘하고 복잡하다. 하지만 경제는 경제로 풀어야 한다. 일본을 상대로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힘도 결국 경제력에서 나온다.

관세 협상이 단발성 이벤트 쇼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뉴노멀의 질서 속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고 게임같은 협상은 반복된다. 혼자 싸우는 방식으론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우리 현실에서 목도한다.

'경제 블록'의 필요성을 관세 협상에서 배웠다면 이제는 실천 방안을 고민할 차례다.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인 만큼 절박함도 느껴야 한다. 실용정부를 내건 이재명 정부가 관점을 넓히고 큰 그림을 그려 보는 게 어떨지. 한일 수교 60주년 등을 맞아 미래를 말하는 광복절이 됐으면 한다. "바람이 바뀌면 돛을 고쳐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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