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클랜드 법칙'(Falkland's Law)이란 게 있다. 반드시 당장 결정해야 할 일이 아니면 굳이 서둘러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어도 조바심 때문에 괜히 손 대서 악화시키는 것보단 그대로 놔두는 게 낫다는 얘기다.
포클랜드 법칙이란 이름은 포클랜드 제도에서 기인했다. 아르헨티나 동쪽에 위치한 포클랜드 제도는 19세기 초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에서 독립할 때 자국 영토로 선포한 곳이다. 그러나 1833년 영국이 이곳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오랜 갈등이 시작됐다.
1982년엔 이곳을 놓고 전쟁까지 벌어졌다.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이 포클랜드 제도를 전격 침공하면서다. 단 100여 명의 영국 해병대가 지키던 섬은 순식간에 아르헨티나군에 넘어갔다.
영국은 즉시 2척의 항공모함을 투입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영국은 74일 만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냈다. 현재 영국은 포클랜드 제도에 약 13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며 실효지배 중이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포클랜드에 대한 분쟁지역화를 시도하지만, 영국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현 상황에 변화를 줘서 득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포클랜드 법칙이다.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도발에 어떻게 대응할지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2. 미국과의 관세협상은 이익을 늘리는 게 아니라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싸움이다. 애초에 우리에게 좋은 선택지 따윈 없고, 가장 손해가 적은 선택지를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관세를 15%로 낮추려면 미국에 350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0조원을 보내라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다. 당초 우리는 대출이나 보증 중심으로 구상했지만, 미국은 "선불"이라며 당장 현금을 보내라고 압박한다. 투자처도 미국이 정한다는 조건이다. 미국과 일본 간 합의를 준용한다면 기준수익 초과분의 90%를 미국이 갖는다.
외환보유액의 80%가 넘는 돈을 미국에 갖다바치고 이익 회수도 거의 못한다는 조건을 덥썩 받아야 할까. 경제적 손해는 둘째치더라도 또 한 번의 외환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한미간 통화스와프로도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다.
반대로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간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주요 대미 수출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 피해가 집중된다.
대미 관세가 25%로 유지된다면 15%로 인하될 경우에 비해 자동차 산업은 부품 업계까지 포함해 연간 10조원대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된다. 비록 큰 피해지만 500조원을 뜯기고 다시 외환위기를 맞는 것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조기 타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미국이 우리에게 극도로 불리한 조건을 고수하는 상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퇴임시까지 버티는 전략까지 정부가 염두에 두는 이유다. 현대자동차 등 대미 수출기업들의 관세 손실은 재정으로 보전한다는 전제에서다.
#3. 현대 경제학의 총아로 불리는 게임이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협상전략이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협상에선 데드라인(마감시점)이 있는 쪽이 불리하다. 시한 내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먼저 양보를 하려는 유혹을 뿌려치기 어려워서다.
따라서 협상에서 데드라인을 스스로 상정하는 건 자살행위라고 게임이론은 가르친다. 협상 성과를 내년 중간선거에 활용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내년 11월이란 데드라인이 있다. 총선이 2년반 남은 우리까지 데드라인을 설정해야 할까.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국가 간 협상은 언제나 '이중협상'이다. 상대국 뿐 아니라 국내 여론도 설득해야 한다. 때론 국내 여론의 압박이 국가간 협상을 망치기도 한다. 어쩌면 조급함 대신 '포클랜드 법칙'에서 국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