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학교 떠나는 학생들

임동욱 정책사회부장
2025.10.23 05:40

최근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선 반장 보궐선거가 열렸다. 반장이 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평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학업에 뛰어났지만, 특정 과목에서 '내신 1등급'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자퇴를 선택했다는 전언. 검정고시를 거쳐 내년 대학 정시 입시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상위권이 아니더라도 내신 등급에 대한 우려로 전학이나 자퇴를 고려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중간고사 시험에서 실수 몇 개만 나와도 내신이 망가진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럴 경우 기말고사를 잘 봐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하소연 한다. 그래서 원하는 등급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검정고시와 수능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전략적 자퇴'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 1학기 고1 자퇴생 비중이 지난해보다 감소했다는 보도가 있는데, 2학기까지 포함한 연간 수치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고교 1학년 학생부터 내신 평가 방식이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면서 혼란이 커졌다. 내신 5등급제는 올해부터 시행된 고교학점제에 맞춰 기존 9등급제를 A~E의 5등급으로 구간별 기준을 완화하는 제도다. 1등급은 기존 상위 4%에서 10%, 2등급은 기존 11% 이내에서 34% 이내 학생으로 등급별 폭이 넓어졌다. 기존 대비 1등급 인원이 2.5배 증가하고, 기존 3~4등급이 2등급으로 들어오는 변화다. 그런데 내신 1등급을 받지 못하면 서울권 대학 진학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에 학생과 부모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과도한 경쟁 및 학업 스트레스를 완화한다는 취지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압박감은 오히려 커졌다는 지적이다.

석차에 따른 상대평가 등급제는 뭔가 석연찮다. 한 고등학교의 1학년을 300명으로 가정하면, 1등과 30등은 똑같은 1등급이다. 동시에 31등과 102등은 같은 2등급을 받는다. 3·4·5등급도 상황은 같다. '운도 실력'이라고 하지만, 한끗 차이로 등급이 내려간 학생은 억울하다. 옆자리 친구와 등수를 놓고 경쟁해야 하니 잔인하다. 더 냉혹한 현실은 실수가 잉크 자국처럼 남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교고 학점제와 맞물린 내신 제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대 망치면 안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신음하고, 학원가는 불야성을 이룬다.

내신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군사정권 시절이던 1980년 7·30 교육개혁 조치를 통해 '교육 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 방안'의 일환으로 태어났다. 1981년 문교부는 '내신제도 실시방안'을 발표하고, 학생부에 '수우미양가' 방식의 성취도 및 전체 교과에 대한 총점, 평균, 학급석차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1987년까지 전 과목 총점을 매겨 석차에 따라 15등급을 차등 부과하는 내신제가 유지됐고, 1988년 10등급제로 변경됐다. 교고 내신제는 1994년 15등급제로 복귀했고, 2005년 9등급제가 도입됐다.

44년간 지속된 내신제를 포함해 입시 제도를 원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에 따라 일부 개편됐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등급'을 매겨야 할까. 시대는 AI(인공지능)를 이야기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주판알을 바라본다.

정부도 고민이 많다. 경쟁은 낮추되 변별력은 갖춰야 하니 머릿속이 복잡하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수능·내신 절대평가 전환에 공감한다"고 발언했다가 논란이 되자 "개인의 생각"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데, 그간 우리는 땜질식 처방으로 버텨왔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방향도 자주 흔들렸다. 국가교육위원회라는 교육정책 컨트롤타워가 3년전 출범했지만, 여태 이렇다할 성과는 없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현상을 무감각하게 바라봐서는 안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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