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경선으로 꼽힌다. 실용주의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후보와 정통 보수 이념을 앞세운 박근혜 후보가 사활을 건 승부를 벌였다. 본게임은 정작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났지만 예선전은 사생결단식 집안싸움이었다. '친이'(친 이명박)계와 '친박'(친 박근혜)계의 날선 대립에 당이 쪼개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내내 이어질 정도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에서 급기야 곪았던 고름이 터졌다. 친이계의 '공천 학살'에 반발한 친박계가 대거 탈당해 '친박연대'라는 신당을 급조하면서 분당이 현실화했다. 8년 후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총선에선 복수극이 연출됐다.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이 주도한 '비박'(친이 포함) 공천 학살로 정치권에선 '역사의 평행이론'이란 말이 회자됐다. 결과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퇴임 후 구속과 재임 중 탄핵으로 '친이·친박'은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그런데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십 수년 전 '친이·친박'의 해묵은 구원(舊怨)이 난데없이 재소환됐다. 공교롭게도 국민의힘에서 공천 배제 혹은 불이익을 받은 사례가 옛 친이계 인사들에게 집중되면서다. 대구시장 공천에서 탈락한 주호영 의원과 공천 탈락 위기에 몰렸던 박형준 부산시장, 경남지사 공천에서 컷오프된 조해진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
당 지도부에 중도·혁신 노선 변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며 갈등을 빚은 오세훈 서울시장도 비슷한 케이스다. 반면 유정복(인천) 김진태(강원) 김태흠(충남) 이장우(대전) 박완수(경남) 등 과거 친박계로 활동했던 현역 단체장들은 단수 공천으로 결선행 프리패스 티켓을 받았다. 당 안팎에선 "친이·친박 갈등의 앙금과 사감이 아니고선 해석 불가"란 반응이 압도적이다.
'시끄러운 공천'의 주인공은 단연 이정현 전 공관위원장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복심'이자 '입'으로 불렸던 핵심 친박 인사다. 2007년 경선 때도 박근혜 캠프 공보특보로 계파 전쟁의 선봉에 섰다. 당시 가까이에서 본 이 전 위원장은 요직을 꿰찬 어떤 친박 현역 의원들보다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충심과 보수에 대한 신념이 충만한 정치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군을 겨냥한 비판에 열변을 토하며 제 일처럼 방어하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여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 유시민 작가의 'ABC론'(정치인 분별법)을 차용한다면, 그때의 이 전 위원장은 보수 진영에서 'A그룹'(가치 중심) 정치인에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의 상징 자산인 보수 가치와 이념을 지키는 데 매우 충실한 '호위무사'였다는 점에서다. 이 전 위원장은 경선 패배 후 다른 친박계 인사들과 달리 친이계 중심의 중앙선거대책관리위원회 참여도 고사했다. "남아서 박근혜 의원과 보수를 지키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이 전 위원장을 지금도 여전히 A그룹에 분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전 위원장은 "당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 "환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정도의 결단과 충격이 필요하다", "보수의 재건을 이끌겠다"며 며 쇄신과 혁신을 공천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런데 최근 사퇴를 선언할 때까지 보수가 존망의 위기에 몰린 원인과 보수 재건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딱히 들은 기억이 없다. 의사가 정확한 진단과 명확한 치료 목적없이 메스를 잡은 꼴이다.
'현역·기득권' 타파라는 쇄신 공천의 원칙과 기준도 '계파 프레임'에 갖혀 '공천 파동'으로 변질돼 버렸다. 그 사이 지난 2021년 10년 만에 보수가 가까스로 탈환했던 서울은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렸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등판으로 '보수의 심장' 대구는 격전지이자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여론조사만 보면 여권에 넘어가기 직전이다. 보수가 보수다움을 잃어버린 후과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