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교부금 울타리

세종=정현수 기자
2026.04.21 05: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퇴임했다. 4년 전 취임사에서 '세 가지(전문성, 소통, 국내)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말을 행동으로 옮긴 총재였다.

무엇보다 소통 방식이 달랐다. 절간처럼 조용하다고 한은사(韓銀寺)로 불리던 한은은 사교육, 저출생 등 사회 현안에 직접 목소리를 냈다. 최저임금 차등화 보고서 때문에 한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질 정도였다.

언젠가 이 총재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논란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이 총재는 논쟁이 반갑다고 했다. 공론화의 출발점이라는 이유에서다. '연구성과를 책상 서랍 안에만 넣어 두어선 안 됩니다'라는 취임사 문구는 현실이 됐다.

그래서 지난 10일 이 총재가 마지막으로 주재한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소통 주제'를 선택할지 궁금했다.

중동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환율, 물가 등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중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이 총재는 초과세수의 일부를 교육교부금으로 자동 배분하는 경직적 구조를 문제 삼았다.

환율과 유가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이 총재가 '굳이' 교육교부금 이슈를 꺼내든 것은 전쟁이라는 당장의 대외 변수만큼 국가 재정의 일부 비합리성도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총재의 생각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육교부금이라는 울타리가 떠올랐다. 이 총재 취임사 표현을 빌리자면 교육교부금은 법정 비율, 칸막이,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세 가지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우선 법정 비율의 울타리다. 교육교부금은 관련법에 따라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로 조성한다. 안정적 재원을 위한 장치지만, 학생 수나 경제 여건 등과 무관하게 예산이 늘어나는 구조다.

초과세수 상황에선 더 논쟁적이다. 정부는 예상보다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면 빚을 갚거나 지출을 늘린다. 이때 법정 비율에 따라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을 의무 배정해야 한다. 물론 세수결손 때는 반대의 상황도 펼쳐진다.

이번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때는 교육교부금 몫으로만 5조원에 육박하는 돈이 교육청으로 내려갔다. 이 돈을 어떻게 쓸지는 교육청 재량이다. 긴축재정 기조 속에서도 교육청은 비교적 여유로워졌다. 초과세수가 발생할 때마다 불거지는 논란이다.

다음은 칸막이의 울타리다. 교육교부금은 교육청 예산이기 때문에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만 쓸 수 있다. 대학 교육이나 평생 교육 등에는 교육교부금을 쓸 수 없다. 특별회계로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칸막이는 여전히 공고하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이해관계의 울타리다. 교육교부금 제도를 개선하려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학생들에게 각종 현금성 지원을 공약으로 내건 교육감 후보들을 생각하면 기대감이 높지 않다.

교육 예산을 무조건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조를 바꾸자는 이야기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교육 예산은 자동으로 늘고, 쓰임은 묶여 있으며,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한다. 이제는 교육교부금도 세 가지 울타리를 넘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