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잠자는 데이터를 깨우는 아카이브, 안전지능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법학박사
2026.04.23 02:00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

데이터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현재 항공 산업에서 데이터는 '하늘의 지문'과 같다. 항공기 한 대가 이착륙할 때마다 쏟아지는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는 단순한 비행 기록을 넘어 항공안전을 보장할 잠재적 단서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성된 데이터 자체로는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지능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안전이 보장된다. 관리되지 않는 데이터는 '언젠가 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저장 비용만 축내고 보안 리스크만 키우는 차가운 서버실에 쌓아둔 '잠자는 데이터(Dark Data)'에 불과하다. 이를 체계적으로 깨워 살아있는 안전지능(Safety Intelligence)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사고를 예방하고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안전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

항공안전에 있어 핵심은 '위험예측'이다. 정부는 항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동안 개별 관리하던 항공 관련 데이터를 범국가적 차원에서 통합·분석함으로써 안전 취약점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항공안전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예를 들어, 특정 공항 착륙 시 반복적으로 '불안정 접근(Unstable Approach)'이 발생할 경우 당시의 기상 데이터, 관제 교신 기록, 그리고 해당 기종의 정비 이력과 결합(Curation)하는 것으로, 단순한 기록 보존을 넘어 해당 공항의 활주로가 가진 구조적 위험성이나 특정 기종의 운항 취약점을 찾아내는 '예방적 자산'이 된다. 이것이 항공안전기술원(KIAST)이 구축하고 있는 '항공안전 데이터 기반의 선제적 안전관리 정책'의 미래 비전이다.

날로 복잡해지는 항공운항 환경과 급증하는 데이터 양을 감안할 때 기존의 데이터 단순 저장으로는 데이터를 예측 자산으로 활용하기 쉽지 않다. 데이터를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 체계적 관리와 분석을 하기 위한 디지털 큐레이션(Curation)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저장된 데이터를 '연결(Link)'하여 데이터에 생명력을 주는 과정이다. 아울러 항공안전 데이터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안전 핵심 자산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데이터 아카이브(Archive)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는 불필요한 노이즈(Noise)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과감히 걷어내고, 선별적 보존(Appraisal)으로 사고 조사와 안전 분석에 필수적인 본질만을 골라내는 역량이다. 즉, 아카이브는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수집·저장·보존하는 기반 체계로서, 데이터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둘의 관계는 마치 큐레이션이 책을 주제별로 누구나 쉽게 찾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도서관 시스템을 다듬고 맥락을 입히는 과정이라면, 아카이브는 책을 서고에 꽂아만 두는 것이 아니라 필요시 찾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보존'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아카이브는 데이터 자산화의 첫 단추이다. 모든 데이터를 무한정 저장하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이며, 보안 측면에서도 불안하다.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맥락에 맞게 정리하여 미래에도 기록을 읽고 분석가능한 개방형 표준 포맷의 채택과, 데이터 중요도에 따른 분류체계(Classification)가 핵심 과제이다. 이렇듯 아카이브와 디지털 큐레이션은 데이터 '보존'과 '의미 부여 및 활용'의 과정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통합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이때 비로소 잠자던 데이터들이 하늘의 안전을 책임지며 살아 움직이는 실질적인 지표로 깨어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단순한 데이터 수집을 넘어, 초기 설계 단계부터 큐레이션 체계를 도입해야 하고 국가 차원의 데이터 아카이브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숨겨진 데이터를 깨워 지능형 자산으로 바꿀 때, 우리의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고 안전해질 것이다. 잠든 데이터는 비용이고, 깨어있는 데이터는 우리가 누릴 안전의 크기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