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정된 형법상 간첩죄는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혔을 뿐 아니라 간첩 행위를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는 것으로 구체화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배터리·바이오 같은 첨단 산업기술도 국가기밀에 포함되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중요 산업기술도 포함한다고 법에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해석상으로는 국가안보와 경제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기술은 당연히 국가기밀로 봐야 한다. 국가기밀은 유출 시 국가의 안전보장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비밀로서, 형식적으로는 비밀로 분류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 요건만 갖추면 된다는 것이 판례다.
과거 국가기밀은 대부분이 군사·외교상의 비밀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가 경쟁력에서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중요시되고, 경제력의 근간을 기술이 차지하고 있어, 산업기술의 중요성은 급속히 증가했다. 더구나 군사력에서도 핵, 미사일, AI 등 첨단 무기체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감에 따라 기술력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 요소가 됐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 영국의 국가안전법(National Security Act), 중국의 반간첩법 등 주요국에서 기술 유출을 간첩죄로 처벌하며, 간첩 색출을 임무로 하는 각국 방첩 기관의 업무 범위에 산업스파이 색출과 공급망 안전성 확보 등 경제 방첩(Economic Counterintelligence) 활동이 포함된 이유다.
우리 실정법 체계도 이미 이를 반영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국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첨단 산업기술은 단순한 기업의 영업비밀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위한 전략 자산이라는 것을 법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령인 「방첩업무규정」도 방첩을 '국가안보와 국익에 반하는 외국의 정보활동'에 대응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번 형법 개정의 입법 취지도 산업스파이 대응을 포함한다.
실제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중국 등 해외 세력에 의한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 유출 문제가 주요 배경으로 거론됐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에 따라 외국을 위해 국가 핵심 기술을 빼돌리는 행위를 간첩죄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 취지였던 것이다.
법률의 해석에 입법 목적과 취지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적 필요성도 절박하다. 기술 경쟁력이 국가안보와 경제력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 감에 따라 각국은 적극적으로 산업기술 정보수집에 나서고 있다. 이미 정보기관들의 중요한 임무로 부각됐다. 최근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간첩 사건에서 외국 정보기관이 직접 개입한 산업기술 유출 사건이 늘고 있는 이유다.
과거 간첩이 군사기밀 문서를 훔쳤다면, 오늘날 간첩은 반도체 공정도와 AI 기술, 핵심 연구 인력을 노린다. 시대가 바뀐 만큼 간첩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산업기술을 국가기밀로 보는 것은 과도한 확장 해석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