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 성교육표준안도 전면 폐기돼야 합니다."
교육부가 1년여의 수정 끝에 내놓은 성교육표준안과 워크북 내용을 본 성교육 전문가가 한 말이다. 무엇이 심각한지 기사 작성 전 반나절동안 워크북 수정본을 들여다봤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피해자 유발론'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예컨대 중학생 워크북 30개 단원 중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법만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단원은 '성에 대한 자기주장과 거절 방법' 등 무려 5개다. 표준안이 제안하는 대처법은 실소를 자아낸다. 중학생 교사용 지도서에는 성적 강요 행동 시 '자기주장적 의사 표현'을 해야한다며 △눈을 맞추고 좋은 자세를 유지한다 △다정하면서도 조용한 태도를 갖는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등의 행동법을 알려주고 있다.
미혼모·미혼부에 대한 폄하도 발견됐다. 중학생용 교육자료에는 피임이 필요한 다섯 가지 이유를 들면서 '미혼모 미혼부가 되지 않기위해서'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여성의 성역할을 한정하는 부분도 많았다. 일례로 초등 저학년 워크북을 보면 처음 네 페이지에 나온 성인여성은 한명도 빠짐없이 치마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거나 임신을 하고 있었다.
교육부가 만든 성교육표준안은 '여자는 무드에,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단둘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등의 내용으로 비판을 받고 1년여간 수정 작업을 거쳤다. 하지만 워크북 집필 지침에 해당하는 표준안 자체는 거의 수정되지 않았고 수정 작업에는 원 집필진이 그대로 참여했다. 저자들은 대부분 간호학 전공자다. 성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기반보다는 신체발달 중심의 성교육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는 단 한 번 열렸다.
가장 좋은 성폭력 예방법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등의 법과 인식이 변하는 것이다. 피임을 하는 이유는 원치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서다. 바지를 입은 여성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도 많다. 이미 한번 홍역을 치른 교육부는 "사용 여부는 교육청 자유에 맡기겠다"며 한 발 물러났다. 하지만 세금 6억원을 들여 만든 국가 수준의 성교육 내용이 수많은 여성, 미혼모·미혼부, 성소수자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