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배정될 학교가 '혁신학교'라는 말에 결국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최근 만난 한 학부모의 말이다. 혁신학교를 둘러싸고 전국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교육청과 송파구 내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학부모 간 갈등이 대표적이 사례다. 학부모들의 거센 저항에 서울교육청은 결국 내년 3월 단지 내 개교하는 학교에 대한 혁신학교 지정을 미루고 1년 뒤 학부모들에게 혁신학교 전환 여부를 다시 묻기로 했다.
혁신학교는 학급당 25명 안팎, 학년 당 5학급 이내의 학교 운영을 통해 교사와 학생들이 체험·토론 등 맞춤형 수업을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 모델이다.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애초 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를 혁신학교로 전환키로 했지만 지원학교가 많지 않자 신설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면서부터 교육당국·학교와 학부모 간 마찰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기존 학교를 혁신학교로 전환하려면 학부모·교사의 50% 동의를 구해야 하지만 신설학교는 교육감이 원하면 혁신학교로 지정할 수 있다.
지난 4월 말 현재 전국 1만1000여개 학교 가운데 1525곳이 혁신학교 이름을 달고 운영되고 있다. 특히 서울교육청은 오는 2022년까지 전체 초·중·고교(1308곳) 가운데 20% 정도인 250곳을 혁신학교로 만들 계획이다. 교육계에서는 혁신학교를 늘려 내부형 교장 공모제(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를 교장으로 임명)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혁신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다른 학교보다 낮다는 점을 우려한다. 학력을 중시하는 학부모 사이에선 혁신학교가 '학업에 소홀한 학교'란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전국 평균(4.5%)의 3배 가까운 11.9%를 기록했다. 또 교육주체인 학생·학부모·교사들과 충분한 사전 교감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한다. 혁신학교에 대한 추상적인 홍보 대신 그동안 뭘 잘 가르쳤는지, 일반 학교와 차별화된 게 뭔지 구체적인 답을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혁신학교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는 지난 13일 내년에 '민주시민학교'(가칭) 51곳을 시범운영 한다고 발표했다. 교육계에서는 벌써 '제2의 혁신학교'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정책으로 추진할땐 이해당사자들과 대화·설득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선거공약과 국정과제에 얽매여 '예산도 지원하고 좋은 것이니, 무조건 따르라'라며 톱다운(하향식) 방식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는 국민 반발만 사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교육부의 새해 업무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우리 교육 현실과 교육정책, 교육부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현장 소통'을 당부한 대통령의 말을 허투루 듣는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