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이 될 것 같으면 주식백지신탁을 하겠습니까. 본인이 유리한 곳으로 직접 매각을 하겠죠."
일부 국회의원들이 직무연관성이 있는 주식을 소유한 채로 입법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주식백지신탁 제도의 보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신탁한 주식이 매각이 안 될 경우 시한 연장이 계속 이뤄질 수 있고 의원직을 마치고 나면 다시 주식을 찾아갈 수 있어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정기간 신탁한 주식이 팔리지 않는 경우에 대한 후속 조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팔릴 것 같으면 왜 신탁하겠나"=23일 국회 등에 따르면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된 주식백지신탁제도는 지난 2005년 도입됐다.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보유한 주식의 총액이 3000만원을 초과하고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적용된다. 수탁기관은 백지신탁된 주식을 계약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해당 기간 내 처분이 어려운 경우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30일 이내 기간연장이 가능하다. 연장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문제는 주식이 팔리지 않고 매각 시한이 계속 연장되는 경우다. 주식이 팔리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조치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주식을 보유한 상태로 관련업무를 계속 보게 된다. 19대 국회의원 중 주식을 백지신탁한 7명도 대부분 직무연관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은 상임위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입법이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지적이다.
농해수위 소속으로 대형RPC(미곡종합처리장) 회사인 '(주)한국라이스텍' 주식을 보유한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윤 의원의 이름이 들어간 상표명으로 '쌀'을 판매중인 것으로 확인됐고, RPC업계에 반사 이익을 줄 수 있는 '쌀 재포장금지법'(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직접 법안 소위에서 이 법을 심사해 논란이 일었다.
◇왜 안팔리나?…대부분 장외주식 =백지신탁한 주식들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매각이 잘 안되는 장외주식들이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결정을 통지 받은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해당 주식을 매각하거나 주식백지신탁을 체결해야 한다. 백지신탁을 체결할 경우 매각과정에 관여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돼 있어 실제로 매각이 이뤄질 수 있는 상장 주식들은 백지신탁을 선택할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직접 매각을 하든, 아예 직무연관성이 없는 업무를 선택하든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방 유지 출신의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비공개 기업이 대부분"이라며 "비공개 기업의 주식을 신탁을 했을 때는 비상장주식의 특성상 매각이 어렵다"고 말했다. 매각 여부는 전적으로 대상 증권의 특징에 기인하는데 장외주식의 경우 수익성이 불투명해 매수자가 드물다는 설명이다.
신탁한 공직자가 주식이 팔리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측은 이런 우려에 대해선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비상장주식의 특성이 있어 수탁기관이 자체적으로 (매각)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며 "수탁기관에서 고의로 안 팔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없이 의도적으로 매각을 피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 불발시, 업무 재조정-정부 통한 매입 등 보완 필요 =대안으로는 일정 기간이 지나도 주식이 매각되지 않을 경우 업무를 재조정하는 방안이 우선 거론된다. 국회의원의 경우 직무연관성이 없는 다른 상임위로 다시 배정하는 형태다.
자산관리공사 등 정부 기관이 해당 주식을 매입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백지신탁제도를 처음 공론화했던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수탁기관에서 매각이 안될 경우 1회 또는 2~3회까지는 연장해서 처리하는 기한을 주되 그래도 매각이 안되면 그 다음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이 해당 주식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며 "국가가 시장가나 적정평가가액을 매겨 구입한 뒤 이후 국고로 환수시키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이해충돌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경우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나 상임위 배정 과정에서 직무연관성 여부를 엄밀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례대표의 경우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을 살리다 보면 직무관련성이 있는 상임위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후보 선정 때부터 보유 주식 등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상임위 배정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풀기 어려운 만큼 정당이나 개개인의 책임 있는 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한 의원은 "강제로 백지신탁을 하거나 주식 매각을 하게 되면 의원들 입장에서 손해보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결국은 해당 상임위원회에 속한 의원 본인이 이해관계가 있는 법안의 발의나 심의를 자제하는 등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차라리 백지신탁제도를 없애고 무조건 매각을 해야 해당 상임위에 배정할 수 있다는 규정 등을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제한해야 하는지는 판단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