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영감, 연말정산도 나의 일" '갑질'에 국회 떠나는 '청년 보좌진'

이원광, 한지연 , 김남희 인턴 기자
2019.02.13 19:00

[the300][여의도 '극한직업']中企 짧은 보좌진 근속기간, 9급은 '1년7개월'…정치 유망주 육성에도 '적신호'

[편집자주] ‘지금까지 이런 직장은 없었다. 이곳은 직장인가 지옥인가. 네 OOO 의원실입니다.’ 영화 ‘극한직업’을 본 한 보좌진의 자조적 목소리다. 풍운의 꿈을 안고 국회 입성했으나 사적 심부름에 동원되기 일쑤다. 정책을 연구하고 정치를 배우는 길은 요원하다.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 하고 다시 취업 시장으로 돌아가는 보좌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국회 모 의원실의 비서관 A씨는 '연휴'가 두렵다. 해외 여행에 나선 의원 가족의 비행기표 때문이다. 여행객과 티켓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이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맞추기가 더 힘들다. 출발과 도착 시각부터 자리 위치, 항공사까지 원하는 것도 많다. 티켓별로 결제자가 달라 티켓 구매 일은 두 배가 된다. 무엇보다 사적 심부름에 동원된다는 사실이 괴롭다.

# 다른 의원실에 근무하는 B씨에게는 연말 정산이 고역이다. 의원의 소득과 소비 내역을 다루는 사적인 일을 B씨가 처리한다. 그는 의원은 물론 선배 보좌진의 연말 정산까지 '막내 직원'의 몫이라고 말한다. "잘 모른다", "어디 간다", "바쁘다" 등 이유도 다채롭다. B씨는 "'영감'(국회의원을 뜻하는 은어) 연말 정산도 보좌진의 업무인가"라고 한숨 지었다.

'정치 유망주'를 꿈꾸는 청년 보좌진들이 국회를 떠난다. 뿌리 깊은 '의원실 갑질'을 호소하며 극심한 취업난에도 국회를 등진다. 청년 정치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청년 보좌진은 홀대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13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국회 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의원 보좌진의 평균 재직기간은 5년으로 파악됐다. 19대 국회 때(5년4개월) 보다 4개월 가량 줄어든 것으로 수치다.

청년 보좌진으로 구성된 하급 보좌진의 국회 이탈은 더욱 심각하다. 9급 상당 보좌진의 평균 재직기간은 1년 7개월으로 조사됐다. 취업 후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국회를 떠나는 셈이다. 8급 보좌진은 3년, 6‧7급은 4년 6개월로 평균치를 밑돌았다.

이같은 국회 보좌진의 이탈은 청년들의 선호가 낮은 중소기업보다 심각하다. 지난해 11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일자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근속년수는 약 6년 5개월로 조사됐다. 보좌진 평균치보다 1년 5개월이 길다.

대기업과는 비교 불가다. 지난달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근속년수는 약 12년 5개월이다. 보좌진 평균 재직기간의 2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청년 보좌진은 의원실의 갑질 문화가 이직의 주요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 '여의도 옆 대나무숲' 계정에는 의원실 갑질을 호소하는 20여개의 게시글이 게재됐다. 갑질 유형은 주로 △사적 심부름 △업무 가로채기 △과다 업무 등이다. 갑질 주체 역시 의원은 물론 선배 보좌관까지 다양했다.

실제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만난 비서 및 비서관 10여명도 이같은 갑질 행태를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비서관 C씨는 "설이나 추석 명절에 선물 택배가 의원실로 몰려든다"며 "이를 자택으로 옮기는 것도 보좌진 업무"라고 고개를 떨궜다. 비서관 D씨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소리치는 것은 세발의 피"라며 "이 악물고 소리지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의원실 갑질 문화가 한국 정치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정치인 육성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자발적으로 국회에 입성한 청년조차 스스로 일을 그만두면서 정책 연구와 정당 경험을 축적하는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 참신한 정치 신인은 사라지고 기성 세대 중심의 정치 풍토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다.

청년시민단체 청년담론의 김창인 대표는 "의원실 갑질 문화는 청년에 대한 기성 정치권의 관점과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과 정치적 소신을 공유하면서 정치 경험이나 기회를 제공한다기보다 기계 부품처럼 이용하는 것"이라며 "청년 정치가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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