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보수 세계관의 균열

민동훈 기자
2025.11.12 05:00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경주=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1일 경북 경주시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5.11.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

#불과 몇주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중 접근법을 '굴종 외교'라 비난했다. '셰셰(고맙습니다) 외교'라는 조롱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정책을 두고 "안보 구멍"이라 몰아세웠다. 그러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기간 중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샤오미 휴대폰의 통신 보안에 대해 농담을 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이유로 국민의힘은 다시 이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불과 며칠 사이 '중국과 거리를 둬야 한다'던 논리가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로 바뀌었다. 정치적 일관성을 잃으면 비판의 무게도 사라진다. 이쯤 되면 정치적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혼란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원자력추진잠수함 얘길 꺼냈을 때 보수진영의 군 출신 인사들 사이에선 "드디어 제대로 말할 줄 아는 대통령이 나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순간 자신들이 쌓아온 세계관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보는 안보에 약하다'는 프레임이다. '우리가 안보 정당'이라는 국민의힘의 자부심이 흔들리고 있다. 이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인정하자니 그간의 프레임이 무너지고, 비판하자니 자기 모순에 빠진다. 외교의 장에서는 국익이 지상목표인데 지금의 보수는 자신의 입지를 앞세우고 있다. '보수의 세계관'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치의 본령은 상대의 실패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지금 '상대를 부정해야 존재할 수 있는 정당'의 길을 걷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결국 자기 부정으로 돌아온다. 외교와 안보는 늘 국가의 기둥이었고, 보수는 그 기둥을 지탱해온 전통의 정당이었다. 외교와 안보를 자신들의 고유 영역이라 믿어왔던 정당이 이제 그 영역에서조차 방향을 잃었다. 세계정치는 이미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불안정이 맞물리며 세계질서는 힘의 논리가 앞서는 정글로 회귀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글로벌 안보는 동맹과 실리, 가치와 이해가 얽힌 복합적 국제정세 속에서 현실주의적 균형을 요구한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가 바로 그 현실주의 위에 서 있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 성취를 인정한다고 해서 국민의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다시 설 수 있다. 정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그 감각을 잃은 정치인은 아무리 큰 목소리를 내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외교는 더 이상 진영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익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외교와 안보에서 다시 중심을 잡기 위해선 과거의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세계를 새롭게 읽어야 한다.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국익의 언어로 말할 때, 비로소 국민의힘은 '안보의 정당'이란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판을 위판 비판'이 아니라 '자기 성찰'이다. 세계관의 균열을 직시하는 용기, 그 곳에서 보수의 새 길이 시작될 것이다.

머니투데이 더300 민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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