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이다", "아니다. 여성혐오 살인이다"
강남 노래방 화장실 살인 사건이 묻지마 범죄에서 여혐 범죄로 비화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행 동기를 파악해 실제 여성혐오 범죄인지 따지는 것과 별개로, 대중이 이 사건을 여혐 풍조의 극단적 결과로 받아들이고 공분하는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피살사건 후 인근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인파의 행렬이 21일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국화꽃을 가져다 놓고 추모 문구를 적어 메모지에 적어 붙이는 등 애도의 뜻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면서도 '여성혐오가 낳은 비극적 범죄'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고 있다.
사건 직후 경찰은 뚜렷한 동기를 찾기 힘든 '묻지마 범죄'로 봤다. 그러나 체포된 피의자 김모씨(34)가 "평소 사회생활을 하던 중 여성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진술하면서, 여혐 범죄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씨가 사건 현장인 남녀공용 화장실 앞에서 여러 명의 남성을 그대로 보내면서 여성 타깃을 기다린 낸 후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던 폐쇄회로TV(CCTV)가 공개된 것도 이 같은 평가에 힘을 보탰다.
희생자 추모 분위기, 여성혐오 비판 목소리는 강남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20일 서울 신촌역 인근에서 직접 자신의 여성혐오 범죄 피해 사례 등을 소개하는 '필리버스터' 행사가 열린 것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마다 추모 공간이 마련돼 시민들의 자발적 추모 메세지가 붙고 있다. 여성들이 평소 극심한 범죄 공포를 느껴 온 가운데 '나여도 이상하지 않은' 희생자의 비극에 공감해 행동에 나섰다는 평가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혐오 범죄가 맞다, 아니다'의 논쟁이 지속되며 성별간 갈등이 극심하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전문가 평가도 엇갈린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김씨의 피해망상증 전력과 일관성 없는 진술 등에 비춰볼 때 정신질환에 따른 묻지마 범죄"라고 평가한 반면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라도 '인간 아무나'가 아닌 '여성 아무나'를 기다려 범행한 것을 보면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찰이 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경찰이 사건 초기 '여성들에게 무시당했다'는 진술을 섣불리 공개하면서 범행 동기를 단순화하고 성별 갈등만 키운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노 교수는 "기존에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 사이에서 남녀갈등이 심각했는데 피의자 진술이 갈등 고조의 명분과 계기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분석하든, 이미 광범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추모 열기를 불러온 만큼 '여성혐오 풍조에 대한 사회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의견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여성들이 얼마나 높은 범죄 위험과 폭력성에 노출돼 있는지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며 "사회적으로 고조된 문제 의식을 법·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지, 범죄자 한 사람의 이상 행동에 대한 원인 분석에 그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도 "여성혐오 범죄의 뿌리는 성차별에 근거하고 있다"며 "극단적 성대결을 부추기는데 이번 사건을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여성혐오 풍조를 비롯해 성별간 갈등을 해소하는 중요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