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레인지로버 판사' 보고도 '법관신분보장' 강조하는 대법원

김종훈 기자
2016.09.22 04:25

김수천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51)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1억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혐의다. 김 부장판사에게는 '레인지로버 판사'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특히 김 부장판사가 재판에서 가짜 네이처리퍼블릭 상품 제조사범들을 엄벌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대목이 법조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정 전 대표는 김 부장판사가 제조사범들에 대한 항소심 재판 3건을 맡게될 것을 미리 알고 현금 1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고 한다.

실제로 김 부장판사는 청탁받은 재판 3건 중 1건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제조사범들을 전부 실형에 처했다. 김 부장판사는 "네이처리퍼블릭이 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양형사유로 들었다. 이후 사례금 500만원을 더 받았다고 한다.

김 부장판사가 구속됐을 당시 대법원은 '제2의 김수천'을 막겠다며 대책안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대법원은 공무원연금 감액과 재판업무 배제 등 강경책을 내세우면서도 '법관신분보장'을 강조하고 있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고, 징계 처분이 없는 한 법관에게 불리한 처분을 할 수 없다고 정한 헌법 106조가 그 근거다.

그런데 헌법 106조의 보호를 받던 김 부장판사 앞에서 피고인들은 평등하지 않았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같은 선상에 있어야 할 두 사안이 김 부장판사의 처사 때문에 충돌하는 상황이 됐다. 이 상황에서 대법원은 유독 한쪽만 조명하고 있다.

옳지 못한 재판을 하면서 신분보장을 강조하는 법관들에게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다. 국민 5명 중 4명이 '법은 만인에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설문결과도 나올 만큼 사법불신이 팽배하다. 무조건적인 감시·감독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나 '레인지로버 판사'라는 오명이라도 씻으려면 그에 맞는 대책이 신속히 시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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