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23일 새벽 강원도 철원 최전방 GP(전방초소) 내무반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잠든 줄 알았던 황모 이병이 갑자기 일어나 수류탄을 던졌고, 이 수류탄이 폭발한 것이다. 황 이병은 왜 이같은 일을 저지른걸까.
황 이병은 사건 전날 밤 8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윤모 병장과 함께 고가초소 경계근무를 섰다.
경계근무를 마친 두 사람은 상황실로 돌아왔고, 윤 병장은 상황병과 함께 근무 중 열상감시장비(TOD)에 포착된 불빛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황 이병은 상황실 내 간이탄박스에서 다른 이병의 수류탄이 들어있는 지환통을 자신의 야전 상의 주머니에 몰래 넣었다. 그런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황 이병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취사장에서 라면을 먹었다. 다시 내무반에 돌아온 황 이병은 야전 상의 주머니에 있던 지환통을 입고 있던 운동복 상의 왼쪽 주머니에 옮겨 넣었다. 이때가 밤 11시쯤이었다.
곧바로 생활관 밖 1초소 부근으로 몸을 옮겨 지환통 안에 들어있는 수류탄만 챙기고, 지환통은 울타리 밖으로 버렸다. 그런 뒤 상황실에 들러 상황병의 동태를 살피다가 내무반으로 돌아가 범행 기회를 엿보던 중 잠에 들었다.
사건 당일 새벽 1시30분쯤 황 이병의 잠을 깨운 건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다른 동료들이었다. 황 이병은 계속 자는 척을 했고 새벽 1시 50분쯤 내무반 부대원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하고 취사장쪽 출입문을 걸어 잠갔다.
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황 이병은 엎드린 자세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클립과 안전핀을 뽑아 취사장 쪽 출입문 방향으로 던지고 수류탄은 반대편에 있던 상황실 쪽 출입문 방향 바닥으로 굴리듯이 던졌다.
수류탄은 곧바로 터졌고 이로 인해 자고 있던 5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발생한 일이라 목격자가 없었다. 당시 부상을 입은 부대원들은 "자고 있어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이에 군 관계자도 "부상자들 진술만으로는 진상을 조기 규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었다. 밤사이 제 3자가 출입문을 열고 수류탄을 밀어 넣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조사를 진행한 육군은 "GP 내무반 주변 철조망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한 결과 외부침투 흔적이 없다"며 "GP에서 운용 중인 수류탄이 폭발해 수류탄 부품이 생활관 바닥에서 발견된 점으로 미뤄 내부인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제 3자를 용의자에서 배제했다.
결정적인 건 폭발한 수류탄에 사용되던 녹색테이프였다. 이 녹색테이프가 황 이병 관물대 근처에서 발견된 건데, 이와 관련해 육군 수사본부가 황 이병을 추궁했다. 황 이병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행동을 보이자 핵심 용의자로 지목됐고, 이후 황 이병이 범행을 자백했다.
수사본부는 부상 당한 5명과 GP 병력 25명의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수류탄 파편에 남아 있는 유전자와 동일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수류탄 안전 손잡이 등에서 황 이병의 지문과 체액이 발견됐다.
황 이병은 복무 부적응에 따른 현실 도피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 수사본부는 같은 달 28일 GP 수류탄 폭발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황 이병은 동료들에 비해 상급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데 대한 열등감과 경계근무와 작업 등으로 잠이 부족했다"며 "작업간 선임병들의 잦은 질책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오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입대한 황 이병은 평소 선임병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동기생인 이모 이병에게 열등감을 느껴왔으며, GP에 투입된 후 경계근무와 작업 등으로 휴식이 보장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던 중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황 이병은 "수류탄이 폭발한 지점에 빨래건조대와 총기함이 있어 인명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출입문 근처 상황실 방향 바닥으로 던졌다"고 진술했다고 수사본부는 전했다.
또 수사본부는 수류탄을 훔칠 당시 선임병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황 이병 진술을 토대로 상황실 근무자들이 복무 규정을 위반했는지 추가로 조사했다.
경계근무 때 지급되는 탄약은 GP장과 부GP장의 입회 하에 주고 받아야 하며 열쇠 또한 따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황 이병이 근무하던 GP에서는 분대장에 의해 탄약 수급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계 초소도 3곳 중 1곳만 임의로 운영하는 등 규정을 제대로 안 지킨 것이 확인됐다.
수사본부는 황 이병과 함께 GP장, 부GP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지휘 책임을 물어 사단장 조모 소장과 연대장, 대대장을 보직 해임했다. 육군은 사고 GP의 병력을 전원 교체했다. 또 유사 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격오지 부대의 총기, 탄약관리 실태 조사에 나섰다.
같은 해 12월 군 검찰은 황 이병에게는 살인미수, 군용물 절도 혐의를, GP장과 부GP장에게는 각각 군형법상 살인미수와 명령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