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8월 10일, 한국 축구가 일본에 완벽하게 패배했다.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삿포로 참사'로 불리는 경기다.
당시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일명 '만화 축구'로 불리는 공격적이고 화끈한 축구를 지향해 팬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박주영, 기성용, 구자철, 차두리 등 유럽에서 뛰는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점 역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그랬기에 패배는 더 충격적이었다. 이날 한국은 일본에 3골을 내주고 단 한 점도 얻지 못한 채 경기 내내 끌려다녔다. 한일전에서 한국이 3골 차 이상으로 진 것은 1974년 이후 무려 37년 만이었다.
한일전이 열리기 전 한국 축구 팬들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컸다. 당시까지 한일전 통산 전적에서 한국이 압도적인 우위(40승 22무 12패)를 점하고 있었던 데다, "일본에는 쉽게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 또한 기본적으로 깔려있었다.
7개월 전인 2011년 1월 열린 아시안컵 4강전에서 일본과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했던 차여서 복수전에 대한 의지도 높았다. 조광래 감독 취임 이후 패스 위주의 세밀한 '스페인식 축구'를 이식하려던 시도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삿포로돔에서 열린 한일전은 경기 시작부터 종료 직전까지 전술, 체력, 흐름 모두 일본에 완전히 압도당한 전형적인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한국은 박주영을 최전방에 두고 구자철, 이근호, 기성용, 이용래를 중원에 배치해 패스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려 했지만, 일본의 강력한 전방 압박에 저지당하며 빌드업이 완전히 마비됐다.
부상도 잇따랐다. 전반 18분 왼쪽 풀백 김영권이 일본 선수와 충돌 후 발목부상을 입어 박원재로 교체됐다. 그런데 교체 들어간 박원재마저 일본의 슛을 얼굴에 맞고 뇌진탕 증세를 보여 박주호로 다시 교체되는 악재가 터졌다.
전반 35분 일본의 선제골이 터졌다. 중원 패스 실수로 시작된 일본의 역습 상황에서 가가와 신지가 한국 수비진 3명 사이에서 헛다리 짚기를 선보인 후 오른발 슛을 했다. 후반에는 일본이 연달아 득점에 성공했다. 후반 5분 문전 혼전 상황에서 혼다 케이스케가 차두리를 맞고 나온 공을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3분 후에는 가가와 신지가 문전으로 침투해 완벽한 왼발슛을 선보였다.
3골 차로 벌어지자 조 감독은 김신욱, 염기훈, 윤빛가람 등을 연달아 투입하며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의 미드필더진이 경기 템포를 완전히 지배하며 한국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다. 한국은 경기 내내 유효슈팅을 거의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당시 19세였던 손흥민도 후반 교체 투입돼 고군분투했지만 흐름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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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후 일본 언론은 일제히 "라이벌 한국을 완파했다"며 대서특필했다. 1974년 이후 37년 만에 거둔 3골 차 승리에 대해 단순한 친선 경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기존 한일전에서 한국이 피지컬과 정신력으로 일본을 누르던 시대는 끝났다. 기술과 조직력에서 일본이 한국을 완전히 압도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외신들도 "일본이 앙숙 한국을 3-0으로 가볍게 요리했다"는 식의 헤드라인을 썼다. '2011 아시안컵' 우승국이었던 일본이 아시아 맹주로서의 입지를 완벽히 굳힌 것으로 봤다. 유럽 매체들은 박지성과 이영표의 국가대표 은퇴, 이청용의 부상 이탈 등을 언급하며 "한국이 핵심 유럽파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균형을 잃었다"고 평했다.
국내 여론은 비판을 넘어 분노와 허탈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내용 면에서 한국 축구가 지녀온 자존심과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렸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조 감독의 '만화 축구'에 대한 역풍도 거셌다. "한국 축구의 장점인 압박과 투지를 버리고 몸에 맞지 않는 옷(스페인식 숏패스 축구)을 입히려다 망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언론과 축구 전문가들은 "일본은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쌓아온 패스 축구 프레임이 완성 단계에 들어선 반면, 한국은 대표팀 감독의 성향에만 의존하며 표류했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주장 박주영을 비롯한 핵심 선수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핑계 대지 않겠다. 경기력, 정신력 모두 완전한 패배였으며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조 감독 역시 경기 직후 수식어 없이 완패를 인정했다. 조 감독은 "기술, 전술, 세밀한 패스 플레이 등 모든 면에서 일본에 완벽하게 진 경기였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경기가 단순 친선경기를 넘어 3주 앞둔 2014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의 최종 점검 경기였던 만큼 전열을 재정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이번 경기는 대표팀의 약점을 명확히 확인한 예방주사였다. 월드컵 예선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한국은 이후 열린 월드컵 3차 예선에서도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며 본선 진출은커녕 최종 예선에도 오르지 못한 채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삿포로 참사' 이후 축적돼 온 전술적 불신과 여론 악화, 선수단 장악력 문제 등이 폭발하면서 대한축구협회는 레바논 원정 직후인 2011년 12월 조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이후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을 급히 구원투수로 투입해 겨우 쿠웨이트를 꺾고 최종 예선에 턱걸이 진출했다.
당시 대표팀 부진의 원인으로는 그해 여름 축구계 전체를 뒤흔들었던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지목되기도 했다. 5월부터 폭발한 승부조작 사건으로 현직 선수들이 구속되고 일부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국내 축구계가 역사상 가장 큰 혼란과 충격에 빠진 시기였다.
대표팀에도 K리그 출신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있었기에 선수단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아있었고 사기와 신뢰가 바닥을 쳤다. 실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러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름까지 루머로 나돌기도 했다. 선수들이 축구 외적인 대형 악재와 국민적 비난 속에 중압감을 느꼈고 이것이 경기력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