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먹겠다고 울부짖는 아이…진화한 '내가 병'[40육휴]

최우영 기자
2026.02.09 10:13

[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50주차 > 아이의 자아 발달과 취향

[편집자주]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블록 장난감을 좋아하기에 중고거래로 벌크 판매분을 사왔더니 정작 한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다른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 19개월 아이에게 드디어 취향이라는 게 생겼는데 일관성이 없어 부모를 항상 당황스럽게 만든다. /사진=최우영 기자

19개월 딸아이가 갑자기 1년 전 신던 양말을 가져와서 낑낑대기 시작했다. 이미 너무 작아져 발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억지를 부렸다. 새로 산 블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집에 몇 개 남아있던 옛날 장난감을 들고 돌아다녔다. 혹시 말로만 듣던 퇴행인가 싶어 걱정했다.

새 양말을 신기고 월령에 맞는 장난감을 보여주니 성을 내며 반항했다. 주변 부모들에게 물어보니 이맘때의 통과의례 중 하나라고 했다. 이제 아이가 서서히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의 '자아 발달'이 '생떼'로 나타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내가 병'의 진화…선택과 취향
외출 준비 전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 먹는 '양말 선택'의 시간. 얼마 전부터 딸이 스스로 양말을 고르는 취향이 생겼다. 자율성 발달을 위해 마냥 기다려주기엔 소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사진=최우영 기자

두어 달 전부터 '내가 병'의 조짐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전문가 조언 등을 참고해 위험하거나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대부분의 행동을 허용했다. 한겨울에도 가을 점퍼를 꺼내오면 그대로 입히고 현관문도 스스로 여는 '착각'을 느낄 때까지 돕지 않고 놔뒀다.

이 병의 증세가 심해지니 이제는 아이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아침에 목도리를 씌우려면 거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로 들고 온다. 점퍼도 양말도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면 한사코 거부한다. 매서운 날씨에 큰마음 먹고 나간 산책길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코스를 찾아 내달린다.

옷이나 산책 코스는 그나마 아이 선택을 직관적으로 따를 수 있다. 식사시간에는 항상 스무고개를 한다. 아직 단어를 많이 말하지 못하는 아이는 거부 의사를 밝힐 때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뭔가를 먹고 싶어 하는데 대상을 정확히 모를 때 가장 난감하다. 냉장고를 열고 모든 음식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며 "포도 먹을래?" "생선 먹을래?" "계란찜 먹을래?"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심할 때는 7~8번의 거부 끝에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도 있다.

취향 존중하고 싶지만 '일관성'도 없어
우유 먹을 시간에 우유를 줬더니 자신이 요청하기도 전에 준 사실에 분개하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아이. /사진=최우영 기자

가급적 아이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 정작 원하는 게 뭔지 모를 때면 갑갑하다. 심지어 취향이 항상 같지도 않다. 갈색 양말을 며칠 연속으로 선호하기에 아침에 신게 하려고 하면 갑자기 하얀색 양말을 가리키며 우는 소리를 낸다. 요거트 가리키며 먹고 싶대서 한 두어번 먹이면 다시금 김밥을 달라고 한다.

마치 청개구리 같다. 핵심은 자기가 선택하기 전에 부모가 뭔가 미리 제공하면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습성을 역이용할 때도 있다. 하도 밥을 안 먹고 과일만 먹으려고 할 때 미리 준비해놓은 김밥을 치우며 "이거 오늘은 더 먹지 마"라고 외친다. 그러면 아이는 마치 원래부터 김밥을 원했다는 듯이 허겁지겁 김밥을 가져가 빠르게 먹는다. 아직 아기는 아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취향들도 있다. 최근에는 치약에 빠졌다. 양치할 때 맛본 치약이 인상적이었는지 네다섯번씩 짜달라고 한 뒤 양치도 없이 칫솔 위의 치약을 먹어 치운다. 너무 많이 반복돼 치약을 치워버리면 다시 내놓으라며 10여분 동안 대성통곡을 한다. 물을 요구하기에 건네주면 입안에 머금었다가 옷에 곧바로 뱉어버린다거나 과일을 씹고 단물만 빤 뒤 과육을 바닥에 버리는 행동도 잦다. 위험한 행동은 아니라 잘 타이르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뒤치다꺼리하는 게 매일 반복되니 쉽진 않다.

회식 메뉴 정하듯 아이에게 선택지 줘야
그날 그날 바뀌는 이불 취향을 맞추기 위해 침대레 항상 두 벌을 모두 둔다. 다른 이불들은 안 보이게 다 치워놨다. /사진=최우영 기자

자아가 발달하는 아이에게는 '제한된 선택지'를 주라는 조언을 들었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주도권은 부모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작정 아이에게 옷장이나 양말통을 보여주며 고르라고 하기보다, 두세 가지 옵션을 눈앞에 제시하며 그중에 선택하도록 만드는 식이다. 아이에게 "내가 선택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부모가 원하는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일은 씹다 뱉기 쉬운 포도나 방울토마토 대신 사과나 배 위주로 보여주기로 했다. 치약 통은 눈에서 안 보이도록 치우고 대신 과자 종류를 진열해 관심을 돌리기로 했다. 사실 부서 회식 메뉴를 정할 때도 가장 안 좋은 질문이 "뭐 먹으러 갈래요?"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수혜자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육고기나 회' 같은 식으로 두어 가지 정해서 던져줘야 부서원들이 판단하기 쉽다. 또 미리 선택지를 좁혀놔야 "개고기 먹으러 가요" 같은 극단적 선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선택의 순간들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읽는 게 힘에 부칠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차라리 빨리 말문이 터졌으면 좋겠다. 아직 수용언어가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고 표현언어는 미숙한 상태라 더 힘든 것 같다. 다른 부모들은 아이의 언어폭발기에 겪는 '이게 뭐야' 지옥도 만만치 않다고 하지만 하루빨리 직접 느껴보고 싶다. 정작 그날이 온다면 육아 굽이굽이 뇌까리던 "예전이 편했지"라는 말을 지금 시기에 대해서도 쓰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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