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44주차 > 영아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산타 이벤트를 열었다. 알림장 공지사항에 맞춰 빨간 옷을 예쁘게 입혀 등원시켰다. 이날 저녁 알림장에 올라온 사진 속 딸아이는 선글라스를 끼고 산타 분장을 한 차량 선생님을 알아채지 못한 채 오열하고 있었다. 0~1세 반 아이들은 모두 산타를 보고 눈물바다가 됐다는 선생님 말씀에 그저 웃었다.
집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여러 장식을 꾸몄다. 트리에 LED 조명도 달고 초소형 트리도 여러 개 사서 전원을 연결했다. 17개월 아이는 부모의 의도대로 즐기지 않았다. 초소형 트리는 어느새 촉감 장난감이 돼 이틀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큰 트리의 전구 장식은 아이 입속에 들어가 쪽쪽이 대용품이 됐다. 그제야 알았다. 딸은 아직 부모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잔치의 주인공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 사진을 미리 찍은 부모들의 사연이 간간이 올라왔다. 온갖 쇼핑몰에서도 크리스마스용 아이 코스프레 아이템을 판매한다고 푸시 알림이 왔다. 자녀 정보를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기존 구매내역을 기반으로 고객 수요를 예상해 판촉하는 모양새다. 최소한 루돌프 머리띠라도 하나 사서 사진을 찍어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이내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평상시 불편한 옷 입는 걸 싫어하는 아이다. 굳이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촬영용 옷을 입혀봤자 행복하지 않을 게 뻔하다. 예쁜 사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좋아요'를 수십개 수백개 받아봤자 아이는 하나도 즐겁지 않다. 그저 부모의 자기만족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특별한 장소에 나가는 것도 삼가기로 했다. 아직 광장의 루미나리에를 즐길 나이도 아니고 산타를 보고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어린이집 사진을 본 뒤 아이에게 "산타가 무서웠냐"고 물어보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옹, 옹" 물개 소리를 냈다. 외출해 무서운 산타를 또 만나게 하느니 차라리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돌쟁이 아기 최고의 행복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이다. 이 세 가지에 충실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다. 평상시 손이 많이 가 저녁에만 먹이던 아이의 '최애' 임연수 구이를 아침부터 먹였다. 수량을 엄격히 제한하던 뽀X로 비타민도 좀 더 많이 줬다. 아이가 안아달라는 대로 다 안고 집안을 한바퀴씩 더 돌며 열어달라는 찬장, 서랍장마다 다 열어줬다.
트리 장식이 화려한 시내의 명소 대신 집 근처의 처가를 찾아갔다.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머니가 있는 곳이다. 처음 보는 산타를 보고 무서워하던 아이는 할머니 품에선 하루 종일 생글생글 잘 웃었다. 장모님은 아이의 사소한 애교 하나에도 "애가 며칠 새 더 성장했다"며 사랑 가득한 눈길로 아이를 어루만졌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인지라 가족끼리 소박하게 딸기 케이크 하나는 먹기로 했다. 아직 기념일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 '즐거운 날'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기억하는 가장 즐거운 노래 '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러줬다. 이미 생일이 5달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기분이 떠오르는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즐거운 날인 만큼 아이가 좀 거칠게 음식을 먹어도 다 이해해주기로 했다. 케이크에 저돌적으로 다가간 아이는 윗면의 딸기부터 냉큼 집었다. 딸기 9개 중 8개를 혼자 손으로 집어 먹어도 잔소리는 없었다. 마지막 남은 딸기는 장모님 접시에 옮겨 담았지만 결국 아이의 눈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장모님은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라며 마지막 딸기까지 아이에게 줬다. 생크림 범벅의 마지막 딸기를 먹는 아이의 표정은 황홀해 보였다.

명절, 생일, 기념일 같은 것들은 사실 지루한 일상에 지친 어른들이 이를 달래기 위해 만든 연극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다르다. 일상이 매일 새로움의 연속이고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아이들을 어른들의 연극에 억지로 초대해 억지로 옷을 입히고 외출해 사진을 찍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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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에게는 평상시보다 더 많은 자유와 먹을거리, 사랑과 관심, 평온한 낮잠이 최고 아닐까. 훗날 아이는 크리스마스에 산타를 보고 울었던 기억은 잊어버릴 것이다. 물론 케이크의 딸기 9개를 다 먹었던 기억도 지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안고 노래를 불러주며 생크림을 닦아주던 당시의 감각과 애정, 그 분위기는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부모와의 애착이 무의식 속에서 더 강해질 것이다.
사실 사진을 남기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예쁜 아이의 모습을 담느라 바쁜데 정작 주인공은 휴대폰 뺏어가서 빨아먹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득부득 사진을 남기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 딸의 머리가 크고 지각이 생겼을 때 어린 시절 사진을 바라보며 "내가 이만큼 사랑받고 자랐구나"라는 걸 확인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사랑이 언젠가 딸아이의 굳센 자존감의 원천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