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시면서 가족들 건강까지 다 무너졌어요. 진단부터 돌봄시설 입소까지 필요한 절차가 한 번에 연결됐다면 가족들이 겪은 고통도 조금은 덜했을 겁니다."
A씨의 아버지는 2022년 77세가 되던 해 뇌경색과 알츠하이머를 한꺼번에 진단받았다. 건망증이 심해져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받고 병원 진료까지 이어졌지만, 아버지를 낮 동안 돌봐줄 데이케어센터(주야간보호센터)를 찾아 입소하기까지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두 차례 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편마비까지 생겨 단독주택 계단을 혼자 오르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지만 장기요양등급 재심사에서는 가장 낮은 5등급을 받았다.
A씨는 "치매 환자는 낯선 조사원이 찾아오면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린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며 "짧은 면담만으로는 평소 상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증상이 악화돼 요양원을 알아볼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A씨는 "남성 치매 환자라는 이유로 꺼리는 곳도 있었고 시설 내부조차 보여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A씨 가족이 겪은 돌봄 공백은 더 많은 가정의 고충이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지난해 약 96만명으로 추정된다. 고령화로 환자가 꾸준히 늘면서 올해 처음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된 지 8년이 지났지만 환자와 가족이 체감하는 '검사-돌봄-중증 치료' 체계에는 여전히 빈틈이 적지 않다. 초기 검사와 상담을 담당하는 치매안심센터부터 일상 돌봄을 맡는 데이케어센터, 증상이 심해진 환자를 받아줄 치매전담형 시설과 병원까지 단계별 인프라는 갖춰졌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치매 증상이 의심될 때 가장 먼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전국 257개 치매안심센터다. 정부는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조기 검사와 상담, 필요한 의료·돌봄 서비스로의 연계(코디네이션)를 지원한다. 하지만 정작 치매를 처음 마주한 가족들은 어떤 서비스를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4개월 전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처음 겪은 B씨도 그랬다. B씨는 "시어머니가 갑자기 밤낮없이 수십통씩 전화를 걸고 불안 증세를 보여 온 가족의 일상이 멈췄다"며 "인터넷과 주변 지인들을 수소문해 정보를 모았지만 당시 치매안심센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서 데이케어센터를 알려준 것 외에는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곳이 없어 필요한 정보를 모두 직접 찾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치매안심센터를 찾아가더라도 곧바로 진단과 관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 부족과 예약 적체 등으로 정밀검사를 받기까지 2~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100만원이 넘는 비용을 감수하고 민간 병원을 찾기도 한다.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 초·중기 치매 환자의 일상 돌봄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시설은 데이케어센터다. 가족 대신 낮 동안 환자를 돌보면서 식사와 활동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센터 90% 이상이 민간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높은 임대료와 제한된 수가 등으로 도심 내 시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보니 외곽으로 밀려나는 실정이다.
시설이 집에서 멀어질수록 부담은 다시 가족에게 돌아간다. 치매 환자가 매일 시설까지 오가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돌봄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 선택지는 더 줄어든다. 중증 환자를 받아줄 치매전담형 시설·병상이 부족한 요양원에서 폭언이나 배회 등 치매 정신행동증상(BPSD)을 보일 경우 퇴소를 요구받는 이른바 '치매 난민'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7년간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본 C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C씨는 "아버지가 배회하거나 화를 내는 증상이 심해지자 요양원에서 받아주지 않으려했다"며 "그나마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 요양병원이나 구세군 등 종교 단체 시설은 대기가 1년 이상 걸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결국 인력과 비용 문제가 원인으로 언급된다. BPSD가 심한 환자를 돌보려면 일반 환자보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 치매 관련 수가만으로는 추가 인건비를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 등을 통해 치매 관리체계 개편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기관별로 나뉜 의료·돌봄 정보를 연결하고 실제 환자를 받아줄 인력과 시설을 확보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의료와 복지 데이터가 따로 놀아 발생하던 분절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며 "지역별 임대료 차등 보충과 치매 진료 인센티브 등 현장이 체감할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