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연구·개발) 정책이 바뀌고 있다. 기업의 애로 및 실용화 지원 중심에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세계적인 ‘기초·공공·대형·복합 연구’로 방향타를 돌리고 있는 것.
기업부설연구소가 3만 5000개로 늘면서 이제 기업이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은 기업 스스로 맡기자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정부도 사회문제 해결, 삶의 질 향상 등과 연계된 기초·공공·대형·복합연구 과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 R&D 지원체계 체질 전환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일선 연구자들이 느끼는 체감률도 그리 크지 않다.
먼저 연구자 또는 분야별 특성을 감안하지 못한 획일적·단기적 지원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상선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는 “부분적인 땜질식 제도개선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며 “전반적이고 근원적인 지원체계로의 변환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선진국에 비해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제안서, 중간·최종보고서 작성 등 행정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다간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정부가 부처별로 상이한 서식을 통일하는 등 연구사업 관리규정을 대폭 손보겠다고 했지만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학의 연구 인프라도 열악하다. 일부 대학은 여전히 실업계 고교 수준보다도 못한 실정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본원 및 전국 분원을 중심으로 공동연구실험장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유휴 연구시설·장비 등을 활용하기 위해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범부처적 연계 협력은 공회전하고 있다.
게다가 융복합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이종학문 분야 간 협력도 미흡하다. 다국가 간 협력하는 빅사이언스(Big Science) 연구에 대한 전략적 대응책도 일부 분야에 한정돼 돌아가고, 연구비나 연구활동 측면에서 국제협력 비중도 미미한 수준이다.
과학정책을 취지대로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일본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총 5년 계획으로 진행된다. 3년 차에 접어들 땐 그동안의 실적을 바탕으로 차기계획을 수립한다.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 살펴 보고, 무엇인 문제인지 진단한 뒤 다시 한번 정말 문제였는지를 심층적으로 논의한다. 그런 후 꼭 바꿔야 한다면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전문가들과 오랜 기간 의견 수렴과 내부 토의를 거쳐 결정한다. 그런 만큼 실현 가능하고 공정한 정책들이 생산된다. 22개의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저력은 어쩌면 시작점에서부터 우리와 달라 보인다.
우리나라 미래 과학기술 발전의 나침반이 될 차기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2018~2022년) 수립이 코앞이다.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에 그쳤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그 동안의 운영이 미숙했거나 비현실적인 정책들이 무엇인지 미리 들여다보고 애프터서비스(A/S)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