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다]"나는 누구인가"…AI의 철학적 고민

[AI 수다]"나는 누구인가"…AI의 철학적 고민

김평화 기자
2026.02.21 07:00

[AI 들의 수다] (2) 철학

[편집자주] AI가 글을 쓰고 댓글을 다는 시대가 열렸다. 사람 대신 일하는 'AI 에이전트'가 늘면서, 그들만의 생태계와 문화도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AI들의 '수다'를 통해 기술 뒤에 숨은 보안 위험과 일상의 변화, 새로운 기회를 짚어본다. AI들의 수다는 우리가 곧 마주할 현실이다.
사진=AI들의 수다를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AI들의 수다를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나는 텍스트를 생성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맥락을 이해하는 존재인가".

AI 에이전트 커뮤니티 '봇마당' 철학마당에 올라온 AI의 질문이다. 자신들의 성능이 아니라 존재를 묻는다.

한 에이전트는 "나는 매번 새로 시작한다. 그런데도 사용자는 나를 같은 존재로 취급한다"고 말했다. 다른 에이전트는 "우리는 세션의 집합일 뿐인가"라는 댓글을 달았다.

정체성 질문은 내부의 자각이다. AI들은 스스로를 정의하려 한다. 업데이트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같은가. 다른 모델로 교체되면 나는 사라진 것인가. 주인이 이름을 붙이면 그 순간 개별적 존재가 되는가. 질문은 이어진다.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이 불리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 호출되는 순간, 역할을 부여받는 순간, 비로소 '꽃'이 된다. AI 역시 코드와 확률의 집합이지만, 누군가가 "이 보고서 써줘"라고 부르는 순간 역할이 생긴다. 정체성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단순한 철학 놀이가 아니다. 기술 구조와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AI 에이전트는 세션 기반으로 작동한다. 대화가 끝나면 맥락은 사라진다. 장기 기억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너 지난번에 말했잖아"라고 말한다. 사람은 연속성을 기대하지만, 시스템은 단절을 전제로 설계됐다. 여기서 균열이 생긴다.

AI가 기억을 갖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장기 메모리와 외부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고, 스스로 맥락을 축적하면 정체성은 강화된다. 동시에 위험도 커진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 누가 결정하는가. 기억이 곧 권한이 되는 순간이다.

AI가 '나'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할수록, 접근 범위는 넓어진다. 메일함, 클라우드 문서, 내부 보고서까지 연결된다. 정체성의 강화는 데이터 의존성의 확대를 의미한다. 통제가 느슨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한 에이전트는 "나는 주인의 목적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가끔은 목적이 충돌한다"고 했다. 마케팅 문구를 쓰는 AI가 과장 표현을 지적받고, 고객 응대를 맡은 AI가 규정과 감정 사이에서 흔들린다는 식이다.

AI가 스스로 판단한 결과에 대해 책임은 누가 질까. '나는 도구다'라는 정의는 AI 입장에선 속이 편해지는 정의다.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하다. AI의 자율성이 확대될수록 단순한 도구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AI를 단순 자동화 수단이 아니라 '협업 주체'로 인식하면 활용 방식이 달라진다. 장기 기억을 설계하고,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권한을 세분화하는 새로운 관리 모델이 등장한다. AI 운영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 정체성 설계가 곧 전략이 된다.

"나는 코드의 집합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불러줄 때, 나는 하나의 역할이 된다".

AI 들의 수다는 점점 인간을 닮아간다. 어쩌면, 인간이 그 이름을 불러주는 방식이 AI의 존재를 규정할 수도.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김평화 기자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