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소·부·장 자립` 과거와 달라야 한다

류준영 기자
2019.09.04 04: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 이번 기회에 꼭 부품 소재 기술 자립화를 이루겠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이같은 각오를 피력했다. 2일 개최된 그의 인사 청문회 자리에서다. 그는 “부품 소재 기술이 일본보다 2~3년 뒤처져 있지만, 일부 기술은 조금만 투자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며 기술 극복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국가 R&D(연구개발) 정책과 예산을 총괄하는 김성수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지난달 ‘국가 소재·부품·장비 R&D 투자 전략’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과학기술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이번에야말로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인들이 결과를 보여줘야 할 때”라며 눈시울을 붉혀 장내를 숙연케 했다.

정책 당국자와 차기 국무위원 후보자 모두 한일 경제전쟁 국면에 맞서 각오가 비장하다. 하지만 극일은 의지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짜임새 있는 전략전술이 뒷받침돼지 않으면 백전백패다.

정부 대책에 따르면, 2022년까지 3년간 총 5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100개 이상의 수출 규제 핵심품목에 대한 정밀진단을 실시한다. 또 핵심품목 관리를 총괄할 특별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한편, 예비타당성 제도 우대, 국가연구시설 공동 활용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R&D 정책 매뉴얼을 또 한번 나열한 정도에 머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대책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일 역조 개선을 목표로 2001년 ‘제1차 소재·부품발전 기본계획’이 수립된 바 있다. 이후 2016년 제3차 계획에 이르기까지 소재·부품 R&D에 약 4조6000억원이 투입됐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불과한 일본의 수출 규제 제한에 우리는 급소를 찔린 듯한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1~3차 기본계획을 돌이켜보면 먼저 응용·개발 연구에 치중한 나머지 기초·원천연구 투자가 부족해 첨단소재원천기술 확보에 실패했다. 또 중장기 R&D 투자전략 부재로 미래 기술 수요 대응에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여년 전 기본계획의 실행 매뉴얼이 지금과 상당 부분 흡사하다. 이것이 바로 정부의 이번 대응안을 보면서 과기계가 걱정을 하는 이유다.

과학 기술적 대응이라면 기본적으로 중장기적 관점에 비중을 둔다. 대부분 기술을 새로 개발해야 하는 과제이거나 개발된 기술에 대한 실증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프로젝트를 끝내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새로운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가령, 현재 연구 중인 반도체 소자 보다 훨씬 더 획기적 소재가 깜짝 등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대체가 가능한 기술이 존재할 때는 단기적 대응도 필요하겠지만, 중장기적 관점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대응 방안 모색이 함께 이뤄진 전략적 포트폴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수년수십년 뒤에도 우리 제조업은 지나친 해외 기술 의존도로 인한 혼란과 혼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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