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 2명이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7년째 항암 치료받지 않고도 잘 살아계십니다."
김만득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개발된 비가역적 전기천공법(Irreversible Electroporation, IRE)을 국내에 선도적으로 도입한 의사다. 2016년 제한적 의료기술을 신청해 허가받았고 25명의 환자에게 시행했다. 결과는 들쑥날쑥했지만 예상치 못한 '완치 판정'이 나오자 그는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결심했다. "앞으로 이 시술에 집중하겠다"라고.
췌장암은 극악의 생존율로 유명하다. 증상이 뚜렷하지 않고 국가 암 검진 사업에 포함되지 않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진단 당시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은 전체의 20% 수준으로, 나머지 중 절반씩은 간이나 폐 같은 다른 장기로 전이되거나 주요 혈관을 침범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에 해당한다. 주변 혈관이나 장기에 침범한 국소 진행성 췌장암의 경우 항암치료를 받더라도 평균 생존 기간은 진단 후 6~11개월에 불과하다.
진행성 췌장암이라도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보존적 치료 등 시도해볼 수 있는 처치는 점차 늘고 있다. 주로 항암치료에 의존하는데, 아직은 효과가 제한적이라 생존 기간이 짧게는 6개월, 길어도 15개월 정도에 그친다. 항암제 내성이 생기고 부작용이 심해 항암치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료계는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치료를 고안하고 있다. 이 중 주목받는 치료법이 '비가역적 전기천공법'(IRE) 이다. 암 조직 주변에 3~6개의 전극을 삽입하고, 고압의 전기를 흘려 암세포를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IRE는 가정용 콘센트 전압 220V의 10배 이상인 3000V의 전기를 사용한다. 70~90마이크로초의 아주 짧은 시간, 평균 90~180번 반복 시행한다. 고압의 전기로 암세포의 막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크기의 구멍이 여러 개 생기고, 이 미세 구멍이 세포의 내외부 균형을 무너뜨려 세포사멸을 유도한다.
김만득 교수는 "IRE는 열에너지를 이용하지 않아 주변 혈관이나 조직이 거의 손상되지 않는다"며 "암세포가 사멸하면서 미세 구멍으로 암세포 물질이 노출되는데, 이 물질이 백신과 같은 작용을 하면서 체내 면역세포 활동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IRE를 통해 얻은 '완치 경험'은 김 교수에게 더 좋은 치료를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때마침 국내 기업인 '더스탠다드'가 그를 찾아와 장비 개선 의사를 타진했다. 종전에 IRE는 미국 기업의 독식 체제였다. 원활한 소통이 어려워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가 힘들었는데, 국산화를 더 나은 장비를 환자에게 제공할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IRE 시술의 효과를 높이려면 전극을 1.5~2㎝의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하게 삽입해야 한다. 거리와 평형 모두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극이 상호 충돌하거나 소작 범위가 들쑥날쑥해 기대한 만큼 치료 효과를 내기 힘들다. 이쑤시개 굵기의 전극을 배를 통해 집어넣는 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췌장암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판단했다.
그렇게 논의 끝에 고안된 것이 새로운 IRE 장비, 'EPO 다중전극 시스템'이다. 하나의 통으로 된 큰 전극에 3~4개의 작은 전극을 일정한 간격으로 고정한 다중전극(clustered electrodes)으로 한 번에 삽입할 수 있게 장비를 만든 것. 시술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시간은 50% 이상 단축했다. 김 교수는 "전신마취 후 초음파나 CT, 혈관 촬영 등 영상 검사를 통해 암 조직 주변에 전극을 삽입한다"며 "배를 칼로 절개한 후 전극을 삽입하지 않고 피부를 통해 시술해 흉터가 작고 일주일 정도면 퇴원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김만득 교수는 2022년부터 'EPO 다중전극 시스템'을 통해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IRE 치료를 시행했다. 이 중 4명이 사망했는데, 2명은 1년이 채 못돼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 2명 중 1명은 뇌졸중으로 1년 4개월째, 다른 한명은 2년 6개월 후 병의 악화로 숨을 거뒀다. 나머지 9명은 현재 추적 관찰 중이다.
단기 분석 결과 IRE 시술 후 국소 진행성 췌장암의 평균 생존 기간은 기존 IRE 시술이 11~14개월인데 반해 새 IRE 시술은 최대 9개월 이상 늘어난 20.7개월로 집계됐다. 진단 후 평균 생존 기간도 기존 IRE 시술은 17~27개월에서 평균 43.9개월로 최대 26개월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도 이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 중 60대 남성 환자는 항암 치료를 1년째 받지 않고도 암이 자라지 않는 상태라 한다.
김 교수는 새 IRE의 임상 결과를 30일(현지시각) 미국 내슈빌에서 열린 '인터벤션 영상의학회'(Society of Interventional Radiology)에서 발표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김 교수는 "IRE는 종양을 괴사시키고, 백신처럼 작용하는 '치료 목적' 사용과 함께 항암 치료 중 잠시 쉬면서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버는 '치유 목적' 사용도 가능하다"며 "모든 환자가 이 시술을 받고 좋아질 순 없겠지만 항암제, 방사선 치료처럼 환자에게 하나의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새 IRE는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췌장암, 간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신의료기술 인정을 받았다. 김 교수의 연구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까지는 종양이 간이나 폐등 다른 장기로 전이 된 경우는 치료 적응증이 되지 않고, 췌장암 크기가 4㎝ 이상으로 큰 경우 IRE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다만, 치료 경험이 누적될수록 더 많은 환자로 적응증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
새 IRE는 비급여라 1회 치료 시 1000만~1500만원이 든다. 해외보다 50% 이상 저렴하지만 그래도 일부 환자에게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김 교수는 "암 환자에게는 수개월의 생존 연장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췌장암의 항암 신약은 평균 생존 기간을 3~4개월 연장하지만 기존 약제를 모두 대체했을 정도"라며 "새 IRE의 효과가 큰 만큼 정부가 건강보험 적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