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밧줄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코끼리는 다 자란 후에도 똑같은 밧줄에 매인 채 도망치지 않는다. 밧줄이 코끼리의 발이 아닌 마음을 묶기 때문이다. "어차피 안 될 거야" "힘써봐야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학습하다 스스로 삶의 자유를 포기한다.
초등학생 때 처음 아토피피부염(이하 아토피)을 진단받은 이수연씨의 10~20대는 밧줄에 묶인 코끼리를 떠올리게 한다. 피부를 긁느라 잠을 설치고, 피와 진물에 스타킹과 옷이 들러붙고, 어깨에 떨어진 각질을 신경 쓰는 일은 어린 소녀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아무리 깨끗이 씻고 수많은 민간요법을 써봐도 효과는 미미했다. 친구들은 냄새가 난다며 그를 피했다. 매일 전시되는 느낌을 받으며 스스로 벽을 쌓았다.
이씨는 "건조한 피부 때문에 500㎖ 로션을 하루에 한 통씩 사용했는데, 부모님께 짐이 되기 싫어 어릴 때 꿈이 '로션값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뭘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미래를 고민할 겨를조차 없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고 진물이 나도, 아파도, 가려워도 그저 견디기만 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하지만 자가면역질환인 아토피는 얼룩처럼 그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20대 후반이 됐고,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씨는 병원 치료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안지영 국립중앙의료원 피부과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이었다.
안 교수는 "치료를 통해 증상이 개선되면 단순히 피부만이 아니라 삶의 기회 자체가 확장된다"며 이씨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다양한 치료에도 효과가 크지 않고, 부작용으로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안 교수의 지지와 응원은 이씨에게 '약'이었다. 안 교수는 "지금 가장 힘들어하는 점과 가장 빨리 해소하고 싶은 문제를 파악하고, 좋아진 상태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라며 "환자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는 것은 그 시작점"이라 강조했다.
이씨는 '린버크'라는 경구용 치료제를 쓰면서부터 '최소 질병 활성도(MDA)' 달성에 성공했다. 피부 병변에 기초한 의학적 판단에 더해 가려움, 수면장애, 일상생활 영향 등 환자가 체감하는 증상 부담까지 치료 평가에 반영하는 개념이다. 얼굴, 입술 주변 진물 등이 눈에 띄게 줄었고 결과에 만족하며 복약 순응도가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제조사인 애브비에 따르면 린 버그(15㎎, 30㎎)를 꾸준히 복용할 경우 10명 중 7명이 EASI 90(피부 병변이 약 90% 이상 개선된 상태)에 도달한다.
치료 시작부터 6년째, 이씨는 지금 그토록 바라던 '미래가 있는 삶'을 산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서핑'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지만 치료를 통해 "좋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며 도전했고, 지금은 개인 보드까지 마련할 만큼 꾸준히 즐기는 취미가 됐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질환과 이로 인한 마음의 변화를 '파도'에 비유한다. "어떤 날은 잔잔하지만, 어떤 날은 거세게 몰아친다"고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는, 그들의 질풍노도와 같은 감정도 파도에 비유하곤 한다. 이씨는 "아토피도, 감정도 괜찮을 때는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힘들 때는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며 무너질 것 같던 순간도 겪었지만, 치료를 통해 이씨는 삶의 균형을 회복했다. 저녁에 먹는 하루 한 알의 약은 그의 인생을 치료하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는 게 가장 긍정적인 변화"라고 웃었다.
그는 아토피 환자들이 검증되지 않는 민간 치료에 목을 매고, 여러 제품을 강박적으로 구매하는 것 역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라며 이해한다고 했다. 다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제품만큼 의학 기술이 발전해 '맞춤 치료'를 만날 가능성도 커졌다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열린 마음으로 가볍게 병원을 찾아 상담받는 것만으로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며 "작은 시도가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권했다. 안 교수는 "과거와 달리 효과적인 치료제가 다양하게 등장했다"며 "환자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을 피하지 말고 붙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토피는 다 커서도 생길 수 있다? O
아토피는 소아 질환으로 인식되지만, 성인기에도 새롭게 발병할 수 있다. 고령층도 원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가려움증이나 습진성 피부 증상은 아토피로 바라보고 치료한다. 연령과 무관하게 가려움증을 동반한 염증성 피부 질환을 아토피라 부를 수 있다.
치료 부작용이 심하다? X
린버크의 경우 젊은 환자에서 가장 흔한 부작용은 여드름이다. 이 외에도 감염이나 단순포진과 같은 피부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러한 증상들은 대부분 피부과에서 충분히 관리하고 치료할 수 있어, 큰 문제는 아니다.
매번 주사를 맞아야 한다? X
아토피는 주사뿐 아니라 먹는 약(경구제)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 먹는 약은 복용 편의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고, 특히 청소년 환자의 경우 학업 등으로 잦은 병원 진료가 부담될 수 있어 경구제를 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아토피는 경증 질환이다? X
중증 아토피는 최근 건강보험 적용과 함께 질병코드가 공식적으로 부여됐다. 경증 아토피도 시간이 지나면서 때론 환경적인 악화 요인으로 중증 진행할 수 있다. 다만 현재 국내 보험 기준상 환자의 피부 병변(EASI) 등 객관적인 지표로만 치료 효과 평가가 이뤄지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가려움증이나 통증과 같은 증상은 환자가 실제로 느끼는 부분이자, 치료를 통해 해결하고 싶은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평가 지표로 인정이 안 되고 있다. 가려움증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NRS 등)나 환자 보고 결과(PROMs)와 같은 요소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
※ 도움말 안지영 국립중앙의료원 피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