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백신'을 만든다고 하니 좋은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고려대 구로병원. 채혈을 마친 정진경씨(57·여)가 기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질병관리청의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자급화 사업 임상 1상에 참여 중인 정씨는 이날 6개월(접종 24주 후) 장기 추적 관찰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정씨의 혈액은 원심 분리(혈액층 분리) 과정을 거쳐 분석 기관으로 이동한 뒤, 면역원성(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항원으로 작용하는 성질)과 안전성 등을 살펴보는 데 쓰인다. 정씨는 "초기 발열 증상을 빼고는 별다른 문제는 없다"며 "가족들도 걱정 대신 응원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mRNA는 유전정보가 담긴 DNA(데옥시리보핵산)와 면역을 활성화하는 단백질을 연결하는 고리다. mRNA 백신은 병원균이나 단백질을 생산할 거대한 시설이 필요한 다른 제조 백신과 달리, 유전자 정보만 더해 빠른 백신 제품 설계와 생산이 가능하다. 현시점에서 mRNA 기술 선두 주자로는 미국과 독일이 꼽힌다.
'백신 주권' 확립을 목표로 우리나라도 mRNA 백신 자급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질병청은 총 5052억원의 예산을 투입, 전량 수입 중인 mRNA 백신을 2028년까지 국산화하고 신속 개발 플랫폼을 확보할 계획이다.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관을 상대로 비임상부터 임상 3상까지 전 개발 과정을 패키지 형태로 지원한다.
질병청은 신속 개발 플랫폼 구축 시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도 최대 200일 내 백신 제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플랫폼을 통한 항원 교체만으로 3~6개월 만에 새로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단 것이다.
김미영 국립보건연구원 mRNA 백신개발지원과장은 같은 날 국내 백신 기술 개발 현황 발표 현장에서 "매절기 유행 변이에 따라 항원을 바꿔 접종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목표"라며 "코로나19·인플루엔자·니파·한타 등 총 9종의 감염병 관련 안전성을 확보한 백신 시제품 라이브러리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업은 역량을 갖춘 소수 기업들을 대상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단 점에서 주목받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엔 정부 지원 과제가 부처별로 분산돼 실질적 결과 도출로 이어지지 못했단 지적이 있었다. 사업에 참여 중인 GC녹십자, 한국비엠아이 컨소시엄은 현재 각각 임상 2상, 임상 1상 진입 단계에 있다.
신윤철 녹십자 개발본부 개발2팀장은 "비임상 독성시험 결과 임상 예정 용량의 2배까지도 무독성이 확인됐고, 임상 면역원성 시험에선 기허가 백신들과 비교해도 열등하지 않단 점을 입증했다"며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임상 2상 시험계획(IND)을 신청한 상태다. 하반기 2상 IND 승인 후 2027년 3상 IND 제출, 2028년 품목허가 신청 등 계획을 차질 없이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한국비엠아이는 순수 국산 기술 중심의 '차세대 자가증폭 RNA(saRNA) 플랫폼'을 강조했다. saRNA는 체내에서 RNA가 스스로 복제되도록 설계해 적은 투여량으로도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강태진 한국비엠아이 전략기획실 이사는 "백신 생산 단가를 최대 55% 낮추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고가 원료인 캡(Cap)을 쓰지 않아 공급망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것"이라며 "백신 후보물질에 대해 식약처로부터 임상 1상 IND 승인을 받았고 오는 10월 중순 첫 투약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타바이러스 mRNA 백신 개발의 연구 책임자인 정희진 고려대 백신혁신센터장은 saRNA 기반의 '구조 안정화 백신 플랫폼'을 앞세웠다. 그는 "90년대 '한타박스'란 국산 백신이 개발됐지만 현재로선 항체가 충분히 유지되는 고품질 백신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양질의 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이 목표다. 내년 말까지 전임상을 마치고 이듬해 임상 진입이 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mRNA 백신 사업을 총괄하는 남재환 국립보건연구원장은 "mRNA 백신을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역량으로 따지면 한국도 전 세계 5위권 안에 들 것"이라며 "이미 국내 기업들이 핵심 요소 기술 특허를 확보 중이다. 정책적·재정적 부분만 잘 지원된다면 백신 자급화 사업 성공률은 매우 높을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