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5일(현지시간) 폭락했다. 다우지수는 무려 4.6%, 1200포인트 가까이 추락했다. 하루 기준으로 낙폭이 6년 반 만에 가장 컸다. 그 사이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는 2배 이상 올라 2년 반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투매 압력이 거세지자 시장에선 2009년 이후 지속된 강세장이 마침내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됐다. 미국 국채시장에서 먼저 불거진 투매 바람이 증시를 넘어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성과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랐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최근 시장 분위기가 비관적이지만 이면에는 오히려 투매를 반겨야 할 이유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채 금리 상승(국채 가격 하락)이 보다 크고 건강한 경제·금융시장 정상화 과정의 일부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4가지 근거를 들었다.
1. 미국 국채 금리만 오른 게 아니다
국채 금리 상승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미국 국채만큼의 위상을 갖는 독일 국채 금리도 한창 오르는 중이다. 5년 만기 독일 국채 금리는 최근 수년 만에 마이너스(-) 영역에서 벗어났다. 이는 수익률 곡선의 평탄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했다. 수익률 곡선은 장기 채권과 단기 채권의 수익률(금리) 차이(스프레드)를 나타낸다. 스프레드가 낮아져 수익률 곡선이 완만해지는 건 경기침체의 전조로 읽힌다.
2. 인플레 전망 개선 등 '좋은 힘' 작용
엘에리언은 '좋은 힘'이 이런 현상을 야기했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채 금리가 오른 건 통화정책의 실수나 국가 신용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 성장세와 인플레이션 전망이 개선된 데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제회복세로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고정수익을 제공하는 채권의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이는 채권 금리 상승 요인이 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친성장 정책이 성장세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 그럼에도 국채 금리는 아직 낮다
국채 금리는 아직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다. 엘에리언은 경제 성장세와 인플레이션 수준이나 향후 전망치로 봐도 정상 수준에 비해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미국 뉴욕증시 대표지수인 S&P500이 20% 오르는 동안에도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오히려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위험자산시장인 증시에 돈이 몰려 주가가 오르면 안전자신인 채권 금리는 오르는 게 보통이다.
4. 통화긴축발 조정 아니다
엘에리언은 최근 국채 금리 상승세를 놓고 채권시장의 가격 조정이 시작됐다고 볼 뚜렷한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움직임이 30년간 이어진 채권 강세장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등을 매입해 돈을 푼 양적완화의 중단, 금리인상 등의 행보는 채권시장에 악재가 되기 때문이다.
엘에리언은 그러나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와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최근 자산시장에 대한 비전통적인 지원을 서둘러 중단하려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고 지적했다.
엘에리언은 또 지난해 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연기금의 투자 여력이 좋아졌다며 최근 증시의 투매와 맞물린 채권 금리 상승은 이들에게 투자 기회가 될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지난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이례적으로 낮고 실적이 좋았던 만큼 최근 불거진 투매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경기 여건이 계속 좋아지면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미칠 투매 바람의 무질서한 여파는 제한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