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13일. 영국 의사 해럴드 시프먼이 감옥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해럴드 시프먼은 1977년 영국 맨체스터 인근 하이디라는 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가 마을에 들어선 뒤 비극이 시작됐다. 자연적 돌연사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 인자한 웃음을 띤 털보 아저씨인 줄로만 알았던 시프먼은 유럽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였다.
1946년생 해럴드 시프먼은 1963년 17세에 어머니를 잃었다. 말기 암 환자였던 어머니는 집에서 의사에게 모르핀을 주사받고 편안하게 영면했다. 이 장면은 시프먼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프먼은 1970년 리즈대학교 의학부 졸업한 뒤 의사가 됐다. 근무 중 발작을 일으키는 등 간질 증세를 보였다. 알고 보니 그는 스스로 모르핀과 같은 아편류 진통제인 페티딘을 주사하며 약물에 중독됐다. 그는 약물을 빼돌리고 공문서를 위조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발각돼 1975년 병원에서 해고되는 동시에 의사 자격을 상실 했다.
2년가량 재활한 뒤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 시프먼은 1977년 의사 자격을 회복하며 더니브룩 의료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무렵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개인병원을 개원하는 등 입지를 쌓았다.
시프먼은 50~60대 고령의 환자를 노렸다. 희생자 중 80%가 연금수령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환자를 갑작스럽게 방문한 뒤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사했다. 환자가 죽는 모습을 지켜본 뒤 현장을 빠져나온 시프먼은 유족들에게 연락받고는 현장에 처음 온 듯 재방문해 사망 증명서에 서명했다. 환자의 사인은 돌연사로 위장했다.
시프먼에게 살해된 사람들은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거나 긴 의자 위에 누워있었다. 1997년 장의사의 딸이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1998년 정식 수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의 부실 수사로 시프먼의 희생자는 더 늘었다. 희생자 중에는 하이드 시장 출신인 81세 캐슬린 그룬디 부인이 있었다. 특히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로 기록됐던 그룬디 부인은 유언장에 전 재산인 38만6000파운드(약 6억5000만원)를 모두 시프먼에게 넘긴다고 적어 딸의 의심을 샀다.
검시 결과 그룬디 부인의 몸에서는 치사량의 다이아모르핀이 검출됐다. 시프먼은 진료기록을 통해 그룬디가 마약 중독자라고 해명했으나 진료기록이 그룬디가 죽은 뒤 작성된 것이 밝혀지면서 살인이 발각됐다.
한때 시프먼의 동료였던 의사 존 폴라드는 "그는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 자체를 즐거워한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감정 그 자체에 그는 만족했는지도 모른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시프먼은 경찰에 체포되자 "난 살인을 한 게 아니라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준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 1월31일, 법원은 의사 신분에도 고의로 연쇄적 살인을 저지른 시프먼에게 15명을 살해한 혐의와 문서 위조 혐의로 법정최고형인 40년 종신형을 선고했다. 영구격리대상자로 분류된 시프먼은 추가 조사 결과 약 25년간 최소 215명에서 최대 345명을 죽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프먼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영국 웨이크필드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감옥에 가서도 자신의 죄를 끝까지 부정했다. 그는 자신의 생일 하루 전인 2004년 1월13일에 감옥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면서 자기 자신마저 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