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거대한 M14 칩 제조공장에서 클린룸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기계들을 점검하는 가운데, 700대 로봇이 천장 레일을 따라 움직이며 제조 공정의 각 단계 사이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운반하고 있다.
이천에 위치한 SK하이닉스의 메인 캠퍼스에 있는 이 팹은 초당 200편의 장편영화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 HBM 칩을 생산한다.
수십 년간 메모리 칩은 AMD, 퀄컴, 엔비디아, TSMC 같은 기업들이 설계하고 생산하는 로직 칩이나 프로세서 칩에 가려 덜 화려한 분야였다. 이런 로직 칩들은 컴퓨팅의 핵심 연산을 수행하고 전자기기의 동작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천 반도체 팹에서 생산되는 HBM3E 같은 HBM 설계는 메모리 업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 사업기획 담당 최준용 부사장은 기존 DRAM에서는 "고객들이 전력과 성능보다 비용을 우선하지만, HBM에서는 비용보다 전력과 성능이 우선시된다"고 지적한다.
HBM은 소위 대형언어모델 (LLM) 개발자들이 '메모리 월(Memory Wall)'의 영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메모리 월이란 데이터 저장과 검색의 한계가 성능 향상을 가로막는 현상이다. 또한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수천 개의 데이터센터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
AI에서 메모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분야는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제한하려는 워싱턴과 글로벌 경쟁사들과 맞서 국산 반도체 부문을 육성하려는 베이징 간의 치열한 경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또한 업계 최고 기업들의 역사적 순서를 바꿔놓았다. SK하이닉스의 DRAM 매출(HBM은 DRAM의 하위 분야)은 2021년 2분기 7조 5000억원(54억달러)에서 2025년 같은 분기 17조 1000억원으로 급증해, 1980년대 메모리 시장에서 경쟁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최대 라이벌 삼성을 앞질렀다.
"SK하이닉스가 삼성을 추월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터프츠대학교 부교수이자 '칩 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말한다. "이는 마치 닥터페퍼가 갑자기 코카콜라보다 인기를 끌게 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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