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더 숏! (Cover the shorts·공매도 물량 전부 되사들여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2주차에 접어든 지난 8일 일요일 밤(현지시간). 뉴욕 월가의 원유 선물 트레이딩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뉴욕시장보다 하루 먼저 문을 연 아시아 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배럴당 91.28달러에서 119.48달러로 치솟으면서다.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사무실로 뛰어갔다는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팔려는 사람은 없는데 사려는 주문만 수만건이 쌓이면서 가격이 한번에 1달러씩 뛰었다"며 "이러다 정말 150달러까지 가는 게 아닌가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당시 장중 30달러 가까이 급등했던 유가는 몇시간만에 96.4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주요 7개국(G7)이 전략비축유 방출을 시사했다는 뉴스 한 줄 때문이다.
글로벌 외환트레이딩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완전히 '헤어 트리거'(작은 자극에도 반응하는 방아쇠) 상태였다"며 "아시아 시장을 지켜보는 내내 눈앞에서 열차가 탈선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이날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헤드라인 리스크의 포로'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미국과 이란이 내뱉는 '말폭탄'에 하룻새 유가가 10% 이상 급등락한다. 지난 23일 배럴당 100달러를 위협하던 유가가 "이란 발전소에 대한 공격을 닷새 유예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 발표 직후 순식간에 80달러대로 급락했다. 공격 유예 속보가 단말기에 타전된 뒤 1분 동안 거래된 원유 물량이 1300만배럴에 달한다.
전쟁의 충격은 기록적인 자산가치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부의 척도인 글로벌 시가총액이 전쟁 전 157조5000억달러에서 지난 27일 142조8000억달러로 9.3% 줄었다. 세계 3위 경제 규모의 일본 GDP(국내총생산)보다 3배 많은 14조7000억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견줄만한 블랙스완급 충격이다.
폭주하는 유가가 지핀 물가 상승 우려는 전 세계 중앙은행을 수렁으로 끌어들였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원유 공급 차질과 맞물린 경제 붕괴가 걱정이고 손을 놓자니 물가 고삐가 풀릴 판이다.
국채시장에는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금리가 과거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 기준금리 향방을 내다볼 수 있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선 한달 전까지만 해도 기정사실이었던 연내 금리 인하 전망이 자취를 감췄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제 '공급 중단'의 공포를 넘어 이 사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티븐 이네스 SPI 에셋 매니지먼트 파트너는 "유조선 자체가 타깃이 되는 순간 그나마 남아 있던 시장의 신뢰마저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한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움직임에 전 세계 자본이 숨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