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킹스. (No Kings·미국에 왕은 없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포토맥 강변에 '반(反)트럼프' 시위 팻말이 또 등장했다. 이 기간 만발한 벚꽃을 즐기는 가족 단위 방문객 사이로 "전쟁 대신 평화를" 같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시민들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전쟁이 한달을 넘겼다. 게다가 종전협상을 두고도 미국과 이란의 말이 엇갈리자 전쟁이 몰고온 충격에 대한 불만이 끓어오르는 분위기다. 현장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난 한 시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공격해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지만 중동발 유가 충격에 시달리는 것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976달러를 기록했다. 한달 전 2달러대에서 1달러 넘게 치솟으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인 4달러 돌파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AAA의 과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59%가 4달러를 기점으로 외식과 쇼핑을 줄이는 등 생활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휘발윳값이 5달러에 육박하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비율이 75%까지 오른다. 단순히 외식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예정된 휴가를 취소하거나 출·퇴근 방식을 바꾸는 등 일상 전반의 강제적 절약이 시작되는 선이 유가 4달러다.
문제는 물가만이 아니다. 최근 한달 동안 글로벌 시가총액이 15조달러(9.3%) 가까이 증발하자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전쟁이 내 노후를 태우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뉴욕증시 사정도 좋지 않다. 나스닥종합지수와 다우존스30평균종합지수가 지난 27일 종가 기준으로 전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하면서 조정구간에 진입했다. S&P500지수도 종전 최고치에서 9%가량 하락하면서 조정구간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워싱턴DC 포토맥 강변에서 만난 은퇴자 로버트씨는 "기름값이 오르는 것도 화가 나지만 지난 30년 동안 쌓아온 연금이 전쟁 한달 만에 깎여나가는 것을 보는 건 공포 그 자체"라고 말했다.
민심 이반은 최근 표심으로도 확인됐다. 지난 24일 치러진 플로리다주 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에밀리 그레고리 후보가 공화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정치적 본거지이자 1년 반 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0%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승리했던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강세 지역)의 심장부'에서 민주당이 판을 뒤집는 이변이 연출된 것이다.
현지에선 "유권자들이 트럼프식 외교 정책에 던진 경고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끓어오르는 전쟁 물가와 연금 증발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워싱턴 정가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내부의 위기감이 심상치 않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기름값 4달러는 정책 대결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으로 통한다. 미 공화당계 정치컨설턴트 프랭크 런츠는 포커스그룹과 인터뷰에서 "유권자들에게 전쟁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것은 갤런당 4달러의 기름값을 설명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어렵다"며 "유권자들은 국경 너머의 정의보다 자신들의 지갑 잔고에 따라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쟁 물가를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한 전쟁 리스크로 규정,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아메리칸 드림을 꺾고 있다"는 거친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내세워던 물가와 경제가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운명을 가를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