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화려한 조명 아래 칵테일 잔을 부딪치는 대신 각자의 노트북 화면을 마주 보며 묵묵히 타이핑 소리를 채우는 청년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잇따라 올라온다. 누군가는 건강보험 서류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세금 신고를 하거나 넷플릭스 등 OTT 구독 서비스를 해지한다. "오늘은 친구들과 카드값 정산 파티", "와인 마시면서 이메일 200개 비우기" 같은 설명도 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진 '어드민 나이트'(Admin Night) 현상이다. '어드민 나이트'는 행정 업무를 뜻하는 '어드민과 밤을 뜻하는 '나이트'의 합성어다. 기업에서 밀린 잡무를 처리하던 시간에서 유래한 것으로, 최근 젠지(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새로운 사교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전 세대가 친구들과의 모임을 유흥 중심으로 소비했다면, 현재의 젊은 세대는 '생산성'이라는 요소를 친목 관계에 추가하며 '어드민 나이트'를 선호하고 있다는 평가다.
'어드민 나이트'의 인기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환자의 치료 전략으로 쓰이는 '보디 더블링'(body doubling) 심리학과 맞닿아 있다. '보디 더블링'은 심리학적으로 누군가 옆에 있기만 해도 집중력과 실행력이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 IT(정보기술) 전문매체 매셔블은 "보디 더블링은 '부드러운 책임감'(gentle accountability)을 제공하고,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느끼는 심리적 장벽을 낮춰준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일을 혼자 짊어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의 '어드민 나이트'는 지루한 '어른의 업무'를 하나의 이벤트로 바꾸는 문화"라고 분석했다.
미국 작가 크리스 콜린은 지난해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6년 전 친구들이 보험, 병원 등 행정 업무에 스트레스받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보고, 매주 화요일 저녁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은 파티 '어드민 나이트'를 열었다"며 "혼자라면 결코 끝내지 못했을 일을 '우정의 힘'을 빌려 해결하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어드민 나이트'의 인기는 최근 젠지 사이에 커지는 '어덜팅(Adulting) 피로감'과도 연결된다. '어덜팅'은 독립적인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각종 책임과 집안일, 행정 업무 등을 수행한다는 뜻의 신조어다. 고물가와 경기 불안 속 젊은 층이 감당해야 할 현실적 부담이 커지면서 "혼자 어른의 노릇을 하기 너무 버겁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것이 '어드민 나이트' 인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경제적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선 "하룻밤 술값이면 일주일 식비가 나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흥 비용 부담이 커졌다. 뉴욕포스트는 "비싼 밤 문화 대신 저비용 사교 활동을 찾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며 "친구 집에 모여 와인이나 차를 마시며 각자 밀린 일을 처리하는 '어드민 나이트'는 비용 부담도 적고 심리적 만족감도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어드민 나이트' 열풍을 향한 우려도 존재한다. 친구와의 사적인 만남조차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생산성' 중심 활동으로 변질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싱가포르 매체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며 어드민 나이트를 '생산성의 사생활 침투' 현상으로 분석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난 육체적·정신적 휴식을 위해 친구를 만나는 자리조차 결국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노는 시간마저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측정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피로도가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