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글로벌 고용시장을 뒤흔드는 강력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인프라 전환을 이유로 대규모 감원에 나선 데 이어 글로벌 금융회사들까지 잇따라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AI발 고용 충격'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는 20일(현지시간)부터 약 80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전체 인력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 공석인 6000개 직무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상 총 1만4000명 규모의 인력 축소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기술 업계 구조조정 가운데서도 가장 공격적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메타는 이 같은 계획을 한 달 전 예고했다.
이번 구조조정은 메타가 AI를 중심으로 회사 운영을 재편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올해 사상 최대 규모로 AI 설비투자를 예고한 가운데 인건비를 줄여 그 재원을 AI 인프라 구축과 기술 투자로 돌리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CEO(최고경영자)는 메타의 AI전환에 사활을 걸고있다.
메타 외에도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창사 이래 최초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진행하며 조직 슬림화에 착수했다. 업계에서는 AI 효율성이 극대화됨에 따라 기존 인력 구조의 전환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AI 도입을 이유로 전체 인력의 약 14%를 감축하기로 했다.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과거에는 팀 전체가 몇 주 걸리던 일을 이제 엔지니어 한 명이 AI를 활용해 며칠 만에 끝낸다"면서 "앞으로는 직원들이 직접 업무를 수행하기보다 AI 에이전트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보수적인 금융권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대형 은행 스탠다드차타드(SC)는 오는 2030년까지 백오피스(지원·관리 부서) 인력의 15%를 감축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감원 규모는 약 8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인사, 위험 관리, 준법 감시 등 기존에 사람의 판단과 문서 작업이 많이 필요했던 직군이 대상이다.
빌 윈터스 SC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조치에 대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낮은 인력을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금융·AI 기술 자본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며 "기술로의 직무 대체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드만삭스의 존 월드론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주 CNBC 인터뷰에서 은행의 일부 전통 업무를 "인간 조립라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제조업이 로봇화·자동화됐듯 은행업도 같은 과정을 거칠 수 있단 의미다. 모간스탠리는 은행들이 AI를 도입하고 온라인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 향후 5년 동안 유럽 은행권에서만 20만개 넘는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본다.
AI 확산과 이로 인한 고용변화는 동시에 진행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세계에 걸친 메타 감원은 싱가포르 법인부터 시작됐다. 공교롭게 싱가포르 정부는 자국 은행·금융사들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많은 기업은 AI로 인한 일자리 축소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올해 앞서 "많은 사람들은 AI가 다가오면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 말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라고 주장했다. 사라지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더 생겨날 거란 의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업들이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거에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인재 유치가 최우선시됐다면 이제는 AI 발전으로 기존 인력을 줄여도 된단 확신이 커지고 있단 설명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AI가 2~3년 안에 미국 일자리의 약 절반을 재편할 것이며, 일자리가 최대 15%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사정이 이렇자 AI에 대한 반감도 커진다. WSJ은 미국에서 AI 산업 성장 속도보다 빠르게 AI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엔 AI로 인한 일자리 상실,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 AI가 교육에 미칠 부정적 영향과 아이들의 정신 건강 훼손 우려 등이 있다.
AI 인프라 컨설팅 회사인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CEO는 "사람들은 AI를 싫어한다"며 "AI는 이민세관국(ICE)보다, 정치인보다도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안에 오픈AI와 앤트로픽을 상대로 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