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인·VAR 넘어 AI까지…월드컵 '테크의 진화' [트민자]

정혜인 기자
2026.06.14 06:30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AFPBBNews=뉴스1

운동장 위를 구르는 축구공의 지름은 22㎝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은 공 하나에 전 세계 50억 명이 동시에 몰입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의 무대 뒤에서는 늘 당대 최첨단 기술들이 경쟁해왔다. 과거 월드컵 기술이 오심을 잡아내기 위한 '방어적 수단'에 머물렀다면,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기술이 경기 운영과 팬 경험의 전면에 나서는 '공격적 인프라'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환됐다. 그 중심에는 AI(인공지능)가 있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축제를 넘어, 세계 빅테크들이 자사의 거대 AI 모델과 데이터 인프라의 안정성을 전 세계 수십억 명 앞에서 증명해 보이는 가장 매력적인 '기술 쇼케이스'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가장 역동적이고 변수가 많은 환경 속에서 자사 기술의 정확성을 입증하는 것만큼 강력한 글로벌 마케팅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 2026 북중미 월드컵 공식 기술 파트너인 레노버는 이번 대회를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월드컵"으로 규정하며 AI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공인구 '트리온다'. 스페인어로 3개의 파도를 뜻하는 트리온다에는 AI(인공지능)와 친환경 기술이 결합됐다. 미세 천공 피부 기술로 공기 저항을 역대 최저로 낮추고, 내부 칩의 배터리 수명과 데이터 정밀도를 대폭 개선해 완벽한 판정을 지원한다. /로이터=뉴스1
화질 혁명에서 센서 판정까지

월드컵 기술의 역사는 미디어와 디지털의 진화와 궤를 같이한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컬러 TV 중계의 확대는 안방 시청자들에게 현장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월드컵을 전 세계 축제로 격상시켰다. 이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정보 제공이 이루어지며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의 진입을 알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계 화질의 혁명이 일어났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일부 시험 중계가 이뤄졌던 고화질(HD) 중계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전 경기가 HD로 제작·중계돼 HD가 월드컵 중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대회로 여겨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의 일부 경기는 3D 영상으로 제작·중계되기도 했다. 당시 FIFA와 방송사들은 3차원(3D)을 'TV의 미래'로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3D TV 시장 실패로 '3D 경기 중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기술 실험으로 평가받았다.

2018년 7월15일(현지시간)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결승전 패널트킥 관련 비디오판독(VAR) 장면. /로이터=뉴스1

화질의 발전은 안방 시청자들에게 심판보다 더 정확한 시야를 제공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오심 논란을 키우는 기폭제가 됐다. 이에 FIFA는 심판 판정 분야에 대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공의 골라인 통과 여부 전자적으로 판정하는 '골라인 판독 기술'(GLT)이 도입됐다. 월드컵 판정의 첫 기술 도입으로 심판들의 '골 오심' 우려를 지웠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비디오판독(VAR)이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 기술로 심판은 경기장 밖 판독실의 지원을 받아 페널티킥, 퇴장, 오프사이드 등 주요 장면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첫 도입 당시 VAR가 경기 흐름을 끊는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젠 현대 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공인구 내부에 센서를 심고 컴퓨터 비전을 결합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정 시스템'(SAOT)을 처음 선보였다. 평균 70초가 걸리던 판정 시간이 25초대로 줄었고, 3D 시각화 화면을 통해 팬들도 판정 근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정확성과 속도를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이자 AI·센서 기반 판정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가 뛰는 2026 북중미 월드컵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기술의 진화가 정점에 달한 'AI 월드컵'으로 불린다. 이번 대회 출전국이 48개국으로 확대하고, 경기 수가 104경기로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인 만큼, 전체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 AI 도입이 전방위로 확대됐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사용되는 AI VAR 아바타 /사진=FIFA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심판 판정 분야다. FIFA는 AI 기반 3D 선수 아바타와 차세대 오프사이드 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 선수들은 대회 전 신체 스캔을 거쳐 디지털 아바타로 구현되며, 이를 통해 경기 중 위치 추적 정확도를 높인다. 경기장에는 다수의 고해상도 카메라와 센서가 설치돼 선수 움직임과 공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공인구 '트리온다'에는 관성측정장치 (IMU) 센서가 장착됐다. 이 센서는 공의 움직임을 초당 500회 측정해 공의 속도와 방향, 회전 등 회전 등 3차원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VAR 시스템으로 즉시 전송된다.

AI는 심판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전술 분석에도 활용된다. FIFA와 기술 파트너들은 생성형 AI 기반 분석 플랫폼 '풋볼 AI 프로'(Football AI Pro)를 공개했다. 이 플랫폼은 경기 데이터를 분석해 코치진과 선수들에게 전술적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자금력이 풍부한 강팀만 누릴 수 있었던 첨단 분석 역량을 모든 참가국이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 AI 기반 분석 플랫폼 '풋볼 AI 프로'(Football AI Pro)와 3D 선수 아바타를 활용한 조별리그 A조 1차전 대한민국-체코 경기 분석 자료 /사진=FTFA 홈페이지

팬들이 체감하는 변화도 크다. AI는 중계 화면을 바꾸고 있다. 오프사이드 판정 장면은 3D 그래픽으로 재구성되고, 심판 시점 카메라 영상은 'AI 흔들림 보정' 기술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제공된다. 실시간 하이라이트 제작과 데이터 시각화 역시 AI가 담당한다. FIFA는 물론 기술 협력 기업들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AI 기반 스포츠 중계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대회 운영에서도 AI 존재감이 커졌다. AI는 경기장 시스템 모니터링, 방송 인프라 운영, 관중 이동 관리, 안전 관리 등에 AI가 활용된다. 특히 안전 관리에는 'AI 로봇개'를 활용한다. 로봇개는 대회 기간 경기장을 포함해 모든 시설에 배치돼 실시간 영상을 전송하고, 보안요원들은 이를 바탕으로 한 안전 조치에 나선다.

2월11잃(현지시간) K9-X 로봇개가 멕시코 과달루페의 BBVA 스타디움에서 시연되고 있다. 이 로봇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기간 위험 지2역 감시와 모니터링, 초기 현장 진입 임무 등을 수행할 예정으로 과달루페시의 새로운 치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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